'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관람 후에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추억과 향수를 느끼기 위해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봤지만 남는 것은 슬퍼하는 등뿐이었다. '슬램덩크'를 보면서 나이 듦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이제 나는 '슬램덩크' 속 투지와 열정보다 잔잔하게 밀려드는 슬픔에 더 공감하는 감성을 가지게 됐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1차전 경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원작 만화와 달리 포인트 가드인 송태섭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26년 만에 전설적인 만화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원작과 분명히 다른 포인트를 가져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을 것으로 보인다. 원작의 주인공인 강백호를 빼고, '농구가 하고 싶어요'라는 명대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불태운 불꽃남자 정대만, 방향이 정해진 채치수와 말수가 없고 감정이 없는 서태웅을 빼면 남는 것은 송태섭뿐이다.
송태섭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얼마 되지 않아 형을 떠나보낸다. 송태섭의 형인 송준섭은 농구를 잘하는 농구 유망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형에 비해 키도 작고 재능도 없었던 송태섭은 항상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송태섭의 어머니 역시 죽은 형과 비교당하며 농구를 하는 송태섭을 보며 가슴 아파한다. 곁에 있는 아들과 떠난 아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그의 슬픔은 송준섭의 방을 정리하면서 우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슬픔에 관한 이야기로 느껴지는 것은 우는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는 등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송태섭의 어머니 역시 죽은 아들의 방을 정리하다가 엎드려서 운다.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은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들썩이는 등에서도 느껴진다. 어떤 눈물은 등에서부터 시작된다. 척추에서부터 시작되는 울음은 인간의 절망과 닿아있는 기분이 든다. 엄마가 자식을 그리워하는 슬픔. 나는 언제 저런 슬픔을 목격했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저렸다.
송태섭 역시 형과 추억이 담긴 아지트에서 형의 물건을 보며 펑펑 눈물을 흘린다. 그 장면에서 역시 송태섭의 우는 얼굴이 아닌 등을 비춰준다. 바다가 보이는 동굴에서 눈물의 시작은 들썩이는 등이었다. 흐느끼는 등의 모습이 그 어떤 장면보다 슬펐다. 그리고 등이 울면서 그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었다.
살다 보면 수 없이 많은 슬픈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매번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슬픔에 무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장을 세게 맞은 듯한 슬픔도 있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슬픔은 사람을 등에서부터 무너지게 만든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며 눈물 흘리는 얼굴을 지울 수는 있지만 들썩이는 등은 감출 수 없다. 결국 모든 사람은 등으로 울고 그 등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등을 위로 할 수 없다.
슬픔에 깊이 적셔져 있는 등을 마주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등부터 울고 있는 소중한 사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슬픔. 그 거대한 슬픔 앞에서 무력해지는 나의 슬픔. 그 슬픔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오롯이 녹아있다. 등으로 우는 나의 연인이여, 벗이여, 가족이여 나는 그 슬픔으로 조용히 노를 저어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