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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Jun 18. 2022

정상가족에 대하여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브로커'를 보고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관람 후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피가 이어져 있다는 것이 가족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식을 낳아 한 집에서 함께 키우는 것이 정상 가족이라면 그 외의 모든 가족은 정상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정상 가족에서만 아이가 자라는 것도 아니며 피가 이어져 있는 가족만이 가족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브로커'는 정상 가족과 그 이외의 가족과 혈연과 아이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브로커'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이를 훔쳐서 인신매매하는 상현(송강호 분)과 동수(강동원 분)의 이야기다. 상현과 동수는 비가 오는 날 소영(이지은 분)이 베이비박스 바깥에 두고 간 아이 우성을 훔친다. 상현과 동수는 돈을 주고 우성을 불법 입양해갈 부모를 찾았고, 소영은 우성을 다시 되찾기 위해 베이비박스 시설로 다시 돌아온다. 이 모든 사정을 알게 된 친엄마 소영은 상현과 동수가 우성을 팔아넘기는 일에 동참한다. 형사 수진(배두나 분)과 이형사(이주영 분)는 인신매매범인 상현과 동수가 아이를 팔아넘기는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이 여정에 함께 한다.

영화로서 '브로커'의 가장 큰 매력은 인신매매범인 상현과 동수 그리고 소영의 여정을 응원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아이를 훔쳐서 파는 범죄자들과 아이를 버려놓고 다시 찾아와서 팔아넘기려는 엄마는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다. 하지만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와 정상적으로 아이를 입양할 수 없는 부모를 '선의'로 이어주려 한다는 상현의 명분은 비도덕적이고 불편한 이들을 조금은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상현과 동수가 오직 돈만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상현과 동수가 애정으로 우성을 보살 핀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여정에 친엄마가 함께 한다는 것도 불편한 시선을 거두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소영과 동수 역시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란 어른들이다. 그 결과 동수는 인신매매범이 됐으며, 소영은 성매매 여성으로 지내다가 미혼모가 돼서 자식을 파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소영과 동수가 불법적인 방법으로라도 우성을 정상 가족의 일원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납득이 된다.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이 어처구니없는 인신매매범들과 미혼모의 여정이 가슴으로 이해되고 응원까지 하게 되는 것은 분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힘이다.


좋은 점도 있지만 '브로커'는 유치하다. '브로커'는 모든 주제 의식을 배우들이 전부 다 대사로 풀어서 이야기한다. 가족의 의미는 물론 동수의 숨겨진 사연이나 소영이 성매매를 하다가 만난 우성의 친부를 죽이고 도망 다니고 있다는 사정과 동수와 소영의 희미한 러브라인 까지도 전부 다 대사로 설명이 된다. 아이를 낳고 책임지는 것은 엄마여야만 하는 현실이나 아이를 버리고 불법적으로 사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불평까지도 보여주기보다 말해준다. 영화적인 재미나 은유나 상상의 여지없이 정직하다. '브로커'는 관객들을 휘어잡고 빠져들게 만들기보다 설교하고 가르친다.

설교하고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효과가 없지는 않다. 고아에 대한 편견이나 낙태와 가정과 결혼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그런 잡념이 파고드는 것 역시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살인자의 자식도 전과자도 무조건 괜찮다고 받아주려고 하는 동수의 해맑음 역시 답답하다. 감정에 빠져 있는 순간이 지나고 동수를 키워야 하는 현실을 과연 동수와 소영이 감당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특히나 현실은 무시하고 소영과 장밋빛 미래만 바라보는 동수의 모습은 판타지를 넘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분명 '브로커'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하는 재미를 주며 편견과 선입견에 절여진 스스로를 반성하게도 만든다. 하지만 그 방식이 세련되거나 자연스럽지 않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송강호, 강동원, 아이유, 배두나, 이주영, 송새벽, 김선영, 이동휘, 김새벽, 이무생, 박해준, 백현진, 류경수에 이르기까지 영화 여러 편을 찍고도 남을 배우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좋은 배우들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커진다.


영화의 결말 역시도 허무하다. 상현이 우성의 친부의 아내가 보낸 깡패를 죽이고, 수진이 소영이 살인죄로 감옥에 간 동안 우성을 돌본다. 복수를 위해 우성을 되찾으려는 사람이 청부 업자가 죽었다고 하여 순순히 포기했을까. 범죄를 수사하다 만난 아이를 돌보는 여자 형사가 존재할까. 세상 훈훈한 결말이 어색한 것 역시 현실을 무겁게 건드려 놓고 캐릭터가 붕 떠 있기 때문이다. 무거운 현실과 가벼운 캐릭터의 간극을 배우들의 이름값으로 메워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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