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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May 22. 2022

가족이라는 허울에 대하여

영화 '카시오페아'를 보고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이 리뷰를 읽지 말아주세요! 꼭 영화를 보고 읽으시길 바랍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잘 울지 않는다. 특히나 슬픈 상황을 만들어놓고 울라고 하는 감독들의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가 젖어들게 해야지 멱살쥐고 흔드는 건 별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시오페아'는 멱살을 쥐고 흔드는 쪽에 가까운 영화다.


'카시오페아'는  변호사, 엄마, 딸로 완벽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수진(서현진 분)이 초로기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며 아빠 인우(안성기 분)와 살아가는 내용을 담았다.


'카시오페아'의 특이한 지점은 부정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클리셰는 낳아준 부모인가 길러준 부모인가의 갈등이었고 주로 그 갈등의 중심은 모녀나 모자 관계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낳았지만 길러주지는 않은 부녀 관계를 그린다. 인우는 수진을 낳았지만 수십년간 해외에서 출장 근무를 하며 아빠 노릇을 하지 못했다. 인우는 수진의 졸업도 변호사 시험 합격도 결혼도 그저 소식으로만 듣고 멀리서 축하할 뿐이었다.


여기에 더해 수진과 어머니의 관계는 드러나지 않지만 수진은 계속해서 인우 앞에서 혼자서 컸다고 말한다. 수진은 어머니가 죽으면서 물려주고 싶다고 한 유품도 거부하면서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음을 은근히 드러낸다.


마치 부모에게 사랑 받지 못한 자식이면 그래야한다는 듯이 수진은 직장 동료는 물론 아버지와 딸에게도 냉정하고 차갑다. 이혼하고 혼자 딸을 키우는 수진은 자신의 딸인 지나(주예림 분)에게도 혹독하게 군다. 물론 지나에게는 엄마로서 다정한 면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수진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늘 화가 나 있는 모습이다.

'카시오페아'의 백미는 바로 지나다.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우리집'에서 유진 역을 맡았던 주예림은 훌륭한 배우로 성장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들면서 생생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에서 웃는 장면에는 모두 지나가 있다.


서현진은 '카시오페아'에서 초로기 알츠하이머 환자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루게릭 병으로 망가져 가는 에디 레드메인이 떠오를 정도로 자연스럽다. 혼자서 변호사가 되고 이혼을 선택하고 아이를 맡아서 키우면서 일도 잘하는 완벽주의자 변호사 수진이 알츠하이머로 무너지는 모습이 그래서 더 안타깝다.


영화 대부분 민낯으로 등장하는 서현진은 그 어떤 로코 주인공 보다 아름답다. 연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수진에서 하나 둘 씩 덜어내면서 무감각해지고 무표정해지고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 수진이 병들어가는 속도와 관객의 감정의 속도가 일치하면서 서현진의 연기에 감탄하게 된다.

알츠하이머로 무너져가는 딸의 곁을 지키는 인우는 희생하고 헌신한다. 어떤 불평 불만도 하지 않고 묵묵하게 딸의 곁을 지킨다. 수진이 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뒤에 인우의 고통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인우는 싸울 상대 없는 고독하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싸움을 해야하는 것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딸은 어린 시절로 천천히 돌아가고 인우는 기르지 못했던 세월을 반성하듯이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이 영화는 부모 자식간의 절대적인 사랑과 가족애를 그려내고 싶어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속죄처럼 보인다. 수진은 딸에게 냉정하게 대한 과거를 후회하고, 인우는 먹고 사느라 딸을 돌보지 못한 세월을 반성한다. 결국 가족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족쇄처럼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똑똑하고 귀여운 딸 지나는 수진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두려워하지 않는 지나의 모습은 슬프기 보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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