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에서 푸꾸옥까지, 나의 허니문 와인

홋카이도 눈밭에서 베트남 땡볕까지, 와인 한 병

by 리트리버

지난 글에서 일본 와인의 가성비와 접근성을 칭찬하며 "마트에서 편하게 집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이번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독자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다.

오늘 소개할 와인은 솔직히 말해 '가성비'와는 거리가 조금 있다. 내가 구매했을 당시 가격이 세금을 포함해 4,708엔(약 4만 원 중반). 장바구니에 그냥 툭 담기에는 손이 떨리는 금액이었다. 칼디 커피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지만 사실 와인 라벨 패키지가 너무 화사하고 이뻐서 집어 든 와인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마셔본 일본 와인 중 정말 'Best'였다. 홋카이도에서 시작해 한국을 거쳐 베트남 푸꾸옥까지. 그 긴 여정을 견뎌내고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장식해 준 와인, [카멜팜 와이너리 요이치 노보리쵸 샤르도네]를 소개하고 싶다.


image.png 칼디 커피 공식 홈페이지 이미지


와인의 이름은 [카멜팜 와이너리 요이치 노보리쵸 샤르도네].

와인의 소개를 간단히 해보자면, 홋카이도 지역의 요이치라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칼디커피 매장 한정 와인이다. 잠깐 와인의 고향 이야기를 하자면, '요이치'는 홋카이도 관광의 성지인 오타루 바로 옆 동네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산토리와 함께 일본 위스키의 양대 산맥인 '닛카 위스키(Nikka Whisky)' 증류소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위스키를 만든다는 건, 그만큼 물이 좋고 기후가 서늘하다는 뜻이다. 요이치의 이 서늘한 기후는 섬세하고 우아한 포도를 길러내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칼디커피 회사가 이 땅에 직접 와이너리를 세우고 공을 들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신혼여행.png 라이스마켓 레스토랑에서 찍어본 요이치 와인


1월에 구매한 와인은 4월, 나의 결혼식까지 무사히 버텼고 결국 신혼여행지인 베트남 푸꾸옥까지 날아갔다. 우리가 묵었던 곳은 '리젠트 푸꾸옥 리조트(Regent Phu Quoc Resort)'. 메인 레스토랑인 '라이스 마켓(Rice Market)'에 콜키지 비용을 지불하고, 이제 막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마주 앉아 이 와인을 오픈했다.

베트남의 습하고 더운 공기 속, 에어컨 빵빵한 5성급 리조트 메인 레스토랑에서 칠링된 화이트 와인 한 잔. 결론부터 말하자면, 굉장히 맛있었다.


리조트의 동남아 음식들, 특히 볶음밥이나 해산물 요리처럼 '간장'이나 '피쉬소스' 베이스의 음식들과 만났을 때 이 와인은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시너지를 냈다.


WhatsApp Image 2026-02-05 at 8.43.08 PM.jpeg
WhatsApp Image 2026-02-05 at 8.43.09 PM.jpeg

테이스팅 노트:

향: 오크 숙성을 과하게 하지 않아 잘 익은 사과, 감귤, 그리고 흰 꽃 향기가 은은하게 피어오름.

맛: 쨍하고 기분 좋은 산미가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주는 느낌이며 특히 간장베이스의 동남아메뉴를 훨씬 살려주는 느낌. 약간의 오크통 숙성으로 헤이즐넛의 따스하고 고소한 맛도 있었음.

비유: 비싼 흰색 셔츠를 무심하게 걸친 듯한 세련된 깔끔함.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았는데 귀티가 흐른다.

추천 페어링 : 팟타이, 베트남 반세오, 미고랭 같은 단짠한 맛의 동남아 음식, 한우구이, 크림소스 베이스 리조또


돌이켜보면 참 긴 여정을 함께한 와인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 홋카이도에서 한국, 그리고 다시 푸꾸옥까지. 깨질까 봐 옷가지 사이에 꽁꽁 싸매고 다녔던 그 수고로움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WhatsApp Image 2026-02-05 at 9.03.05 PM.jpeg
WhatsApp Image 2026-02-05 at 8.54.17 PM.jpeg
WhatsApp Image 2026-02-05 at 8.43.12 PM.jpeg


4,708엔이라는 가격표 앞에서 꽤 오래 망설였던 기억이 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와인을 집어 들 것 같다.


일본 와인이 궁금하지만 실패하고 싶지는 않은 분들, 혹은 여행지에서 나에게 주는 작은 사치를 고민하는 분들께 조심스럽게 추천해 본다. 가성비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돈값'은 확실하게 하는 녀석이라고 본다. 또 그 와인 안에는 당신의 여행을, 혹은 당신의 특별한 날을 완성해 줄 '추억'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직원이 말 거는 게 무서워서 여기까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