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보고 데려왔는데, 추억 만들어준 오렌지와인

'안주 도둑' 검거

by 리트리버


일본에서 만난 호주 와인, 클레멘타인


오늘은 일본산 와인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사 와서 굉장히 맛있게 먹었던 호주 와인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작년에 회사 동료분을 보러 갔었던 고베, 산노미야역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와인이다.


한국 마트에는 뉴질랜드 와인이 꽤 많지만, 호주 와인, 그것도 이렇게 독특한 녀석은 낯설지도 모르겠다. 호주 와인이 일본 백화점 한복판에, 그것도 이렇게 예쁜 자태로 놓여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무엇보다 이 녀석은 내 인생 첫 '오렌지 와인'이었다.


잠깐, 오렌지 와인이 뭐야?


1. 오렌지로 만든 와인?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진짜 오렌지로 만든 와인인 줄 알았다. 한국에도 머루 와인이 있듯이, 오렌지처럼 상큼하고 달달한 와인인 줄 알았으나 — 100% 포도로만 만드는 와인이며, 단맛이 1도 없는 와인이다.


2. 왜 오렌지 와인이라고 부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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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포도의 품종을 가지고, 레드 와인 만드는 방식(껍질째 발효) 만든 와인이며, 투명해야 할 청포도 즙이 포도 껍질과 씨앗이랑 며칠씩 함께 숙성되면서, 껍질에 있는 노란 색소와 떫은맛이 배어 나와 주황색이 된 것이다. 이것이 오렌지 와인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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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생겨 먹은 라벨부터 호감도를 엄청나게 먹고 들어간다. 거칠게 말하면 라벨이 진짜 개이쁘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색감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와인이다.


와인 정보

이름: 로건 클레멘타인 피노 그리 (Logan Clementine Pinot Gris)

생산자: 로건 와인즈

생산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의 오렌지 지역
(지역 이름이 진짜 'Orange'라는 지명이라 한다.)

품종: 피노 그리지오 100%

가격: 2,750엔

비고: 오렌지 와인
(참고로 이 오렌지 와인의 특성이 호불호가 엄청나게 갈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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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이유: 귀엽디 귀여운 삽화가 있는 라벨과 영롱한 와인색깔 & 수용가능한 가격


이 와인은 특히 외모만 보고 첫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잊을 수가 없었던지라, 처음에 봤을 때는 일단 손에서 내려두고 '내일도 생각나면 사자.' 하는 생각으로 첫날에는 구매를 보류했으나 너무나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색감의 삽화가 잊을 수가 없었던지라 바로 그다음 날 가서 구매했다.


고베 마루이 백화점에서 구매했고, 택스프리는 5,000엔 이상부터 가능하다고 해서 그냥 택스프리없이 2,750엔 주고 구매해 왔다.


라벨 속 소녀의 이름, 클레멘타인


구매 당시 직원에게 들은 스토리가 꽤 흥미로웠다.

라벨에 그려진 모자를 쓴 귀여운 소녀가 바로 와인 메이커 피터 로건 (Peter Logan)의 실제 친딸의 이름이 클레멘타인(Clementine)이다. 딸이 태어난 것을 기념해 만든 와인이었다.


라벨 그림은 동화책 같은 아기자기한 색감으로 만들었고 '내 딸처럼 사랑스럽고, 톡톡 튀고, 생기발랄한 와인을 만들고 싶다!'라는 모토로 만들어진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좀 더 조사해 보니 그림 속의 딸의 친아빠이자 와인 메이커 대표 피터 로건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와인은 내 딸 클레멘타인과 똑같습니다. 약간 새침하고, 생명력이 넘치고, 살짝 대담하죠."


테이스팅 노트


일단 솔직히 라벨의 분위기만 봤을 때는 스위트 와인이지 않을까 했는데, 맛은 엄청나게 드라이해서 대표의 말대로 정말 대담함이 느껴지는 와인이었다.


색상: 핑크오렌지 색상

향: 복숭아, 살구, 오렌지 껍질향과 함께 장미향도 나면서 견과류의 고소한 향내도 아주 살짝 났다.

맛: 언급한 것처럼 엄청나게 드라이하지만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생동감이 느껴지며 귤이나 한라봉 껍질의 시트러스함이 굉장히 돋보였다.

특징 : 항상 정제된 와인만 먹다가 오렌지와인을 처음 마셔보니 어린아이처럼 통통 튀어 다니는 매력이 굉장히 신기한 와인이었다. (얌전한 와인이 아니라 마치 말괄량이 여자아이가 뛰어노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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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타인 오렌지 와인의 추억


연애 10년 차에 접어들어 지금의 와이프(당시의 여친)와 나는 드디어 '우리'라는 이름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부동산 서류에 도장을 찍고, 전입신고를 마치고, 하나둘 가구를 들여놓았다. 침대, 식탁, 냉장고, 소파. 그렇게 빈 공간이 조금씩 '집'이 되어갔다. 근데, 둘이서 처음 해보는 이사이고 부동산 서류 작업들과 각종 신고 자료들 등등할 게 많고 온갖 잡비에 돈이 생각보다 많이 나가게 되어서 둘 다 수중에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월급에서 빼서 넣어놨던 적금에서 돈을 꺼내 쓰는 건 둘 다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도 나름 분위기는 내고 싶어서 집 앞에 있는 마트를 갔다. 유통기한 임박 킬바사 소시지가 50% 할인해서 팔고 있었다. 그거를 일단 집어 들고 집에 와서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양파 하나를 채 썰어서 팬에 기름을 두르고 채 썬 양파를 천천히 카라멜라이징 했다. 뭔가 있어 보이고 거창한 용어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미림이나 설탕 같은 단 거 대충 살짝 넣고 천천히 그리고 타지 않게 볶는 거다. 다른 한쪽에는 라면 끓여 먹는 냄비에 소시지를 대충 썰어서 구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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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간단한 양배추 샐러드와 볶은 양파와 유통기한 임박 킬바사 소시지 구이.

동거 후 처음으로 오픈한 와인이 이 와인이었다. 크롬북으로 둘이서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틀어놓고 마셔봤던 이 와인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페어링 추천: 안주 경찰이 아닌 '안주 도둑'


일단 와인을 따르고 보니, 레드도 아닌 것이 화이트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로제라고 하기에는 색감이 살짝 다른 것이... 여튼 좀 희한했던 와인이었다. 그치만 라벨이 일단 이쁘니 와이프가 라벨이 너무 이쁘다면서 눈으로는 좋은 점수로 먹고 들어갔다.

킬바사 소시지의 기름진 맛과 볶은 양파의 달큰함을 이 오렌지 와인의 상큼하고도 상쾌한 시트러스함이 너무나도 조화롭게 잡아줬고, 오히려 화려한 요리보다는 소박한 식사 자리를 정말 레스토랑처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와인이었다. 와인 자체가 굉장히 통통 튀고 복합적인 와인이지만 어지간한 음식들을 다 커버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베트남 쌀국수나 팟타이 같은 음식에도 좋을 거 같고 깐풍기나 유린기 같이 매콤한 음식과도 좋겠다고 느꼈고 특히 한국음식 중에는 떡볶이나 순대 파는 곳에서 파는 분식류 튀김과 족발, 너무 맵지 않은 막국수와도 페어링이 좋을 거라 생각한다.


외국음식과 페어링 : 베트남쌀국수, 팟타이, 깐풍기, 유린기, 서브웨이 터키 샌드위치(소스는 랜치소스)

한국음식과 페어링 : 분식집 튀김류 & 족발과 보쌈



총평


서사가 있는 와인답게, 이 와인은 우리 둘만의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미슐랭 가이드에는 절대 실리지 않을 페어링이지만, 그날 그 순간은 어떤 레스토랑보다 좋았다. 유통기한 임박 소시지와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양파. 이 클레멘타인 와인을 만나 미슐랭 못지않은 페어링이 되었다.


인간은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쉽게 잊는다.

매일 보는 사람, 늘 곁에 있는 공간, 손 닿는 곳에 있는 평범한 음식들. 당연한 것들이 사실은 가장 특별한 것임을 인간은 자주 잊어버리는지도 모르겠다.


이 와인은 그런 소중함을 일깨워준 와인이었다.

어찌 보면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이 나와 가장 특별한 순간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일상에서의 약간의 변화와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이 와인이 혹시라도 보인다면 한 번 시도해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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