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에서 우연히 찾은 이탈리아 — Cucina Luca

by 리트리버

세련된 게 먹고 싶었다

다낭 여행 중이었다. 쌀국수도 맛있고, 반미도 맛있고, 분짜도 맛있다. 근데 며칠째 베트남 음식만 먹다 보니, 슬슬 다른 게 당기기 시작했다. 좀 세련된 음식이 먹고 싶었다. 구글맵을 열고 "Italian restaurant"을 검색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다. Cucina Luca. 구글 리뷰 만점에 가까운 평점, 뭔가 체인 느낌이 아니라 누군가의 부엌 같은 분위기. 그래서 그냥 갔다.


Cucina Luca Italian Restaurant

https://maps.app.goo.gl/QpSW9RDCy3xYkjA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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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카운터, 오픈 키친, 그리고 셰프

다낭 안트엉(An Thương) 거리에 위치한 이 가게는 작다. 좌석이 많지 않고, 들어서면 바로 오픈 키친이 보인다. 나는 바 카운터에 앉았다. 주방이 바로 눈앞이다.

요리하는 사람이 사장님이자 셰프였다.

이름은 루카 페카로타(Luca Fecarotta). 이탈리아 마르케(Marche) 지방 출신으로, 다낭에서 6년째 살고 있다고 하신다. 체인도 프랜차이즈도 아닌, 진짜 이탈리아 사람이 다낭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부엌이다.


바 카운터에 앉으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됐다. 셰프 루카님의 음식 철학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이탈리아 현지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동안 베트남에서 먹었던 웨스턴 스타일 레스토랑과는 결이 달랐다.




테이블 위의 세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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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브루스케타.

바삭하게 구운 빵 위에 리코타 치즈, 로스티드 체리 토마토, 바질 한 잎. 거기위에 좋은 올리브 오일과 간단한 치즈가루. 끝이다. 이게 전부다. 근데 이 단순함이 사기였다.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아, 이집 진짜다" 싶었다. 재료 하나하나가 제 할 일을 정확히 하고 있었다. 올리브 오일이 전체를 감싸는데, 이게 마트 올리브 오일이 아니라 진짜 올리브 오일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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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바라문디 레몬 소스 스테이크.

생선 껍질은 바삭, 속살은 촉촉. 위에 레몬 버터 케이퍼 소스가 올라갔다. 브로콜리가 곁들여졌는데, 소스의 산미와 생선의 담백함이 칼같이 맞물렸다. 이건 다낭에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어딘가 지중해 해안가 식당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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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비스큐 새우 파스타.

새우 풍미를 뼈까지 우려낸 비스큐 소스에 통통한 새우가 올라가고, 레몬 슬라이스가 위에 얹혀 있었다. 농후하다. 근데 레몬이 무거움을 딱 잡아준다. 면이 소스를 제대로 머금고 있었는데, 이 면이 핸드메이드라는 걸 씹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식감이 다르다. 모르고 시켰는데 알고보 생면 파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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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 위에 바다가 있었다

음식만 시킨 게 아니다. 와인도 보틀로 갔다.

Lieux Perdus, Pinot Noir.

라벨이 먼저 눈을 잡았다. 하늘색 바다, 모래사장, 그 위에 누워 있는 사람. Lieux Perdus는 따로 찾아보니 프랑스어로 "잃어버린 장소" 라는 뜻이라고 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쉬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근데 이 와인, 좀 특이하다.

라벨에는 분명히 Pinot Noir라고 적혀 있다. 피노 누아면 레드 와인인데 스크류캡을 열고 잔에 따르니, 색이 거의 화이트 와인이다. 연한 금색. 눈을 의심했다. 라벨을 다시 봤다. Pinot Noir 맞다.

레드 품종인 피노 누아 껍질과의 접촉을 최소화해서, 색소 없이 과즙만 눌러 짜는 방식으로 만든다.

쉽게 말하면, 레드 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다. 피노 누아인데 화이트라니. 이런 정체성 혼란이 또 있을까.


셰프님께서이 와인을 설명해 줬다.

"피노 누아 하면 보통 엘레강트하고 우아한 쪽만 생각하잖아요. 근데 이 와인은 피노 누아의 상쾌함을 살려낸 거예요."


한 모금 마셔봤다. 맞는 말이었다. 딸기, 크랜베리 같은 붉은 과일 향이 가볍게 코를 스치는데, 입 안에서는 크리미함이 목구멍을 탁 치면서 감싸준다. 드라이하고, 가볍고, 상쾌하다. 이건 무거운 레드 와인이 아니다. 다낭의 더운 밤에 바 카운터에 앉아서 마시는 와인이다.


보틀 가격, 약 25,000원. 레스토랑 보틀 가격이 25,000원이다. 한국이었으면 마트 와인 가격이다. 라벨도 예쁘고, 맛도 좋고, 가격도 착하다. 이런 와인을 다낭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바 카운터에서 만났다. 여행의 묘미가 이런 거 아닌가.



돌아오는 길에

다낭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먹으러 간 건데, 결국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세 접시의 맛만이 아니었다. 바 카운터에서 셰프와 나눈 대화, 라벨에 바다가 그려진 25,000원짜리 와인 한 병, 피노 누아의 상쾌함.


쌀국수가 싫어져서 검색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프랑스 와인을 마시면서, 이탈리아 셰프한테 와인 설명을 듣고 있었다. 다낭인데 이탈리아고, 와인은 프랑스고, 나는 한국 사람이다. 뭔가 국적이 뒤섞인 이 저녁이, 여행 전체에서 가장 여행다운 저녁이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가게가 가장 오래 남을 때가 있다. Cucina Luca가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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