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단맛으로 살아남은 일본 와인 이야기
지난 스토리 요약 : 1870년대 야심 차게 시작된 와인 프로젝트는 일본의 고온 다습한 기후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프랑스에서 배워온 선진 기술도 고온다습한 기후와 장마 & 태풍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고, 유럽종 포도밭은 병충해로 처참히 괴멸했다. 결국 유럽의 것을 그대로 이식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뼈아픈 교훈과 실패만이 남았을 뿐이다.
당시 일본인들에게 와인 특유의 떫은 타닌과 시큼한 산미는 그저 낯설고 거북한, 심지어 상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드는 서양의 괴상한 주류일 뿐이었다. 와인을 만들 포도도 없었지만, 만들어도 구매할 소비자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이때 판을 뒤집는 승부사가 등장한다. 바로 '하이볼'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 산토리(Suntory)의 전신인 창업주, 토리이 신지로다.
(일본여행 가면 사 온다는 산토리 카쿠빈 위스키를 만든 그 산토리 회사 대표이다.)
그는 "일본인의 입맛을 바꿀 수 없다면, 와인을 일본인의 입맛에 맞추면 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1907년, 그가 세상에 내놓은 '아카다마 포트 와인'은 정공법 대신 철저하게 일본인의 입맛을 공략한 결과물이었다. 설탕과 감미료를 넣어 달콤하게 만든 이 술을 두고 지금에 와서 평가를 해본다면 "그게 무슨 와인이야?"라며 혀를 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달콤한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밥과 생선, 간장 베이스의 짭조름한 식사를 하던 당시 일본인들에게 이 달콤하고 붉은 술은 일본인들의 식탁에 받아들여졌다. '아카다마'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이때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은 훗날 산토리가 위스키 사업에 도전하고 거대한 주류 제국을 건설하는 든든한 '실탄'이 되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묵묵히 흙바닥을 구르며 싸운 이도 있었다. '일본 와인 포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카와카미 젠베이.
이 사람은 일본의 혹독한 기후에 맞춰 어떻게든 포도를 '생존'시키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사재를 전부 털어 넣은 그는 튼튼한 뿌리와 생명력을 가진 미국 포도 '베일리(Bailey)'를 어머니로, 화려한 향과 맛을 지닌 유럽 포도 '머스캣 함부르크(Muscat Hamburg)'를 아버지로 삼아 수정을 시도했다.
한 해, 두 해가 아닌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그가 기록한 교배 횟수만 무려 10,311회.
1만 번이 넘는 실패와 기다림, 그리고 사재를 전부 털어 넣은 눈물겨운 집념 끝에 1927년, 드디어 기적 같은 포도가 태어났다. 바로 '머스캣 베일리 A(Muscat Bailey A)'.
그 끈질긴 노력의 결과로 1927년, 드디어 '머스캣 베일리 A(Muscat Bailey A)'라는 품종이 세상에 태어났다. 딸기 사탕 같은 달콤한 향을 지녔으면서도 일본의 눅눅한 여름을 견뎌내는 강인한 포도. 그래서 지금 이 포도 품종은 일본 와인 시장에서 일본의 레드 와인을 상징하는 품종이 되었다.
그렇게 한쪽에서는 토리이 신지로가 시장을 열었고, 한쪽에서는 카와카미 젠베이가 토양을 정복했다. 자본과 집념.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이 만나 일본 와인은 비로소 '생존'을 넘어 '정착'의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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