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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나 Nov 04. 2023

07. 하루 아침에 약을 중단한 엄마

갑자기 은혜 충만, 감사 충만이라며

아이고 머리야. 주여…



크리스천인 나는 그렇게 힘든 몇 달을 보내며 난 한 번도 그분을 찾지 않았다. 그렇다고 원망도 하지 않았다. 신앙이 그만큼 깊지 않았다는 반증. 교회를 가서 엄마를 위한 기도를 하려 들면 눈물 버튼이 작동되니 몇 번 시도하다 말았다. 그 기도는 내가 집에서 혼자 있을 때나 할 것.


이런 내가 입에서 정말 주여… 소리가 나온 그날은 엄마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서였다. 요 며칠 정신과 약을 싹 끊고 먹지 않은지 며칠 됐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뭐라고?? 약을 끊었어?? 왜???”


어릴 적부터 존경하는 인물을 묻거나 쓰라고 하면 난 주저하지 않고 우리 엄마라고 써냈다. 그런 엄마는 지난 수개월간 내가 평생 알던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갑자기 당신 맘대로 약을 끊다니… 이것 말고도 뭐 지난 몇 달간 자식들 속 여러 번 후벼 팠던 엄마였다. 아프기까지 하면서 왜 이렇게 말은 또 안 듣는지.


석 달 정도 주말마다 친정에 들러 엄마의 수족이 돼주는 생활을 하다 도저히 내 생활도 아무것도 못하겠기에 간격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모도, 아빠도 이제 매주 내려오지 말라고, 너희 생활을 해야 할 거 아니냐며 엄마를 제외한 모두가 그렇게 말해줬다. 좋았다. 나 혼자 하는 결심은 아니라서.


가을부터 격주로 한 번씩 내려갔고 입김이 절로 나는 겨울이 되자 새로 처방받은 항우울제와 항불안제가 엄마에게 조금씩 효력을 발휘했다. 그해 내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조금씩 약발(?) 드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가을에 찾았던 대학병원 담당의사 선생님이 볼 때 엄마의 증세에 비해 그전에 먹던 약의 용량이 적다는 진단을 내렸고 몇 달에 거쳐 약의 용량을 서서히 늘렸다. 그러면서 늘 당부한 것은 담당의와 상의 없이 약을 줄이거나 변경하거나 중단하지 말 것.

그리고 가족들은 약의 용량이 늘어남에 따라 환자가 과하게 붕 떠있거나 평소와 다른 흥분 상태로 보이는 상황이 생기면 바로 내원하라고 했다.


약효가 나타날수록 엄마는 나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줄었고 수개월간 지내던 이모네 집에서도 나와 당신 집에서 조금씩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남는 건 시간뿐인 엄마는 바깥 산책 한 시간 다녀오면 씻고 앉아 휴대폰으로 종일 유튜브를 보는 게 일상이 됐다. 한동안 티브이도 켜지 못하게 했고 뉴스에 나오는 각종 사건 사고가 무섭다며 미디어를 끊고 휴대폰도 가족에게 오는 전화 아니면 열어 보지도 않던 엄마가 유튜브 보는 재미에 빠졌다.


엄마가 한창 힘들어할 때 주변에서 임영웅 노래 좀 보시게 해 봐라, 반려견을 안겨 드려라 등등 엄마의 감정을 자극할 만한 대안을 여러 가지 줬는데 임영웅도 거부했던 우리 엄마는 역시나 믿음 충만한 권사님답게 크리스천들의 신앙 간증 영상을 보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세상에는 당신보다 더 큰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 그 고통과 시련을 신앙의 힘으로 딛고 일어서는 크리스천들의 각종 간증과 기도회, 집회 영상들을 보며 엄마는 조금씩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스란히 그 영상들을 나에게 다 공유를 해주며 시청 소감을 남기며 내 카톡 대화창을 채워놨다. 물론 난 엄마가 공유한 수십 개의 간증과 집회 영상을 단 한편도 끝까지 재생하진 못했다.


당신은 한평생 신앙생활을 했어도 믿음이 부족했고 지금 이 상황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이렇게 여러 사람 힘들게 하며 혼자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했나 보다.

지금 주어진 이 온전한 하루에 감사하기로, 찬양을 할 수 있는 목소리와 입술이 있다는 것,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고 앉아 기도할 수 있게 팔다리가 있다는 것, 자식들이 아직 곁을 지켜준다는 것, 주변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전지전능한 그분이 엄마를 온전히 돌보신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엄마에게 깨달음이 됐고 어느 날부터 찬양의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가만히 앉아 마늘을 까는 것 까지도 다 감사한 엄마가 되었다. 그러니 더 이상 약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엄마는 약을 단칼에 중단했고 겨울 내 예전의 엄마보다 더 은혜 충만, 감사 충만한 권사님으로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떨쳐버렸다. 그리고 이듬해 봄, 나와 아이와 엄마와 3대가 함께 여행 겸 이주해서 살고 있는 외숙모네도 보러 갈 겸 제주도 여행도 며칠 다녀왔다.

엄마를 일이 년 만나지 못했던 외숙모는 그 사이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믿지도 않고 느끼지도 못할 정도였으니까.


어느새 우리도 엄마가 약을 중단한 사실을 잊게 되었고 휘몰아쳤던 폭풍이 알아서 잔잔해진 것처럼 전과 같은 일상을 되찾았다. 그런 일상이 3개월쯤 되어갈 때 나와 통화를 하던 엄마는 요즘 들어 이상하게 자꾸 불안하고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사진 출처: Unsplash

@pina messina / @Vitolda Kl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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