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야기
세준이는 조용하고 둥글둥글한 성격에 친구들과 아무런 갈등이 없는 캐릭터의 아이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성정도 아니다.
급식실에 갈 때 남, 여 각각 한 줄로 서서 가는데 제일 앞에 섰던 친구는 다음날 맨 뒤로 가는 방식이다.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불과 몇 분 차이라도 급식을 배식받는 순서는 어쩌면 사활을 걸만큼 중요한 일이자 권리이다.
오늘은 세준이가 가장 앞에 서는 날이었는데 당번이 실수로 칠판에 번호를 잘 못 적어 다른 친구가 제일 앞에 서 있었다.
줄을 서는데 크고 작은 목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야, 오늘 세준이가 맨 앞이잖아~ 왜 호영이가 맨 앞인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와 같은 말들이 오고 갔다.
그 와중에 정작 맨 뒤에 선 세준이는 말이 없었다.
결국 세준이가 오늘은 맨 앞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마침내
밥을 먹으러 급식실로 향했다.
급식실에서 세준이는 바로 내 맞은편 자리다.
나는 세준이에게 일장 연설(a.k.a잔소리)을 늘어놓았다.
"세준아, 자기 권리는 자기가 지키는 거야. 누군가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넌 그냥 뒤에 서서 왔을 거야?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늘 남들이 너를 위해 대신 말해줄 수는 없어. 그런 상황에서 너의 입으로 네가 분명하게 이야기했다면 더 큰 소란도 없었을 거야. 오히려 네가 말을 안 해서 다른 친구들끼리 갈등상황이 커진거야."
물론 알고 있다.
선비스러운 성정의 세준이는 갈등도 싫어할뿐더러 자신의 순서를 건너뛰어도 묵인할 만큼 평화주의자라는 것.
타고난 성향과 기질을 거스르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것.
급식을 하루 가장 먼저 먹는 일 따위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라는 것도.
하지만 나는 세준이가 이 거친 세상에서
꼭 챙겨야 할 권리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누군가 세준이를 함부로 대하지 않기를
중요한 순간에 세준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이름은 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