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밥을 짓듯 시를 짓는 여자

by 무지개물고기



닳아버린 알맹이만 있습니다

하나를 열면 또 하나가 있는

러시아 인형처럼

매일을 열었습니다

매일 안에는 매일이 있고

메일함엔 읽지 않는

메일이 쌓여갑니다


알맹이는 작고 보드랍습니다

남겨질 것들에 골몰합니다

해진 속옷과 숨겨둔 편지

빛바랜 사진첩과 추억

누군가 다시 사용할

핸드폰 번호 같은


시체에서 금니를 빼내는

장례지도사를

손가락질하지 않겠습니다

어느 날은 그 손가락이

나를 향할 테니까요

숨이 꺼질 때까지

욕망을 욕망하고

사랑을 사랑합니다


가습기가 뿜어내는

수증기처럼

어느 날은 보이고

어느 날은 보이지 않고

어느 날은 흩어지다가

어느 날들이 사라집니다


선인장은 가시를 세우고

낙타는 혹을 달고

사막을 견딥니다

사막에 맨몸으로 태어난

우리는 살결을 맞대면서

새벽의 한기를 견딥니다


여기에 없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작동을 멈춘 관람차처럼

내일과 미래의 꿈이

멈췄습니다


알맹이가 발아래 뭉개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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