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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정과 열정사이 Nov 05. 2023

우리는 기본적으로 덕후들

그림 덕후들의 만남

작가는(예술가)기본적으로 덕후들이다.
일본어"오타구"에서 비롯된 말로, 본래 집(댁)을 뜻한다.


덕후의 정의를 찾아보니, 집에 틀어박혀서 취미 생활을 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란 뜻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한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 흥미를 가진 사람으로 사용된다니! 이만큼 작가와 가까운 표현이 있을까 싶었다. 사회성이 부족하단 말은 약간의 조소가 담긴, 우리(예술인)끼리 하는 농담으로 적격이다.


재밌는 점은, 다른 일반인(?)들의 시선으로 봤을 땐, 도대체 "집에 콕 박혀서 뭘 하냐?'라고 의아해한다는 점인데. 실제로 내가 (일 년 반을 창작한다고 집에 칩거 수준으로 '집콕'을 했을 때, 주변인들에게 들었던 말이다ㅎ) 그들의 호기심을 순수하게 풀자면, 집에 무슨 '꿀단지'가 있다고 종일 뭘 하면서 보낼까? 심심하지 않냐 이런 뜻일 거다.


작가들은 도대체 집에서 뭘 하길래, 꿀단지가 있는 것처럼 나오지 않을까?


나는 이년 넘게 그림책 작가(지망생)들의 모임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년 넘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코로나 시기 겹친 영향도 있지만) 한 달, 또는 두 달에 한 번씩 줌(온라인)으로 만나서, 그간에 사는 얘기, 그린 그림얘기등을 두어 시간 두서없이 하곤 했는데. 서로 '우리 곧 만나요~~'하면서도 나는 너무 당연하게, 실은 못 만날 거란 걸 알고 있었다.(그게 너무 당연했기에 '왜일까'라고 궁금해 본 적도 없다 훗!)


그런 우리가 실제로 대면으로 진짜 만났을 때, 만난 공간이 서울에 한 작가분의 작업실이었는데, 난 일단 초면이기에 비밀스런 작업실이기에, 괜시리  조심스레 들어갔다. 현관과 작은 주방을 지나서,  원룸 중앙에 보이는 세로로 길고 폭도 넓은 단단한 작업대와 통창!!(난 통창을 좀 좋아한다)으로 완벽한 햇볕이 내리쬐는, 밝은공간의 아담한 작업실이었다. 자연스레(초면아닌 초면이기에)삼사십 분을 그간의 생활얘기와 안부인사들을 하고, 작업도구등을 하나씩 꺼내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간 넘게 이어진 장비 설명회 시간? 우리의 눈길은 색연필 브랜드나 물감종류들, 붓이나 펜, 작업 노트나 스케치북으로 옮겨졌다. 물론, 한편에 그림책들과 일러스트잡지들도 빼놓을 수 없는 집주인분의 자랑거리였다. 우리는 마치 황홀한 듯 각종 브랜드(들어만 본 고급진)의 용품들을 만지고, "아 부럽다!"를 연발했다.

"이 노트는 두텁고 물감에 괜찮고요, 이거는 엄청 맨질맨질 부드러워요~"

그렇게, 한 시간여를 남의 장비를 만지면서, 넓은 작업대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각자 풍경이나 느낌을 원하는 도구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보냈다. 난 비록, 여기 오느라 잠을 설쳐서 눈밑이 퀭했고 오는데 한 시간 반이나 걸렸지만 젊으니 상관없었다.


집에 가는 길엔, 주인 작가분은 모인 이들에게 선물로, 휴대용 팔레트와 소모품을 미리 챙겨서, 두둑이 선물로 주셨고, 우린 필요한 도구나 관심 있는 물품들을 적기도 하고, 이런 작업실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그림 덕후들은 지난 2년간의 각자의 작업노트를 보여주며 멋진 점들을 칭찬하고 서로의 성장한 모습들을 보여주며, 응원도 많이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림책자체도 너무 좋아하기에, 집만 허락한다면, 넓디넓은 삼단, 아니 사단짜리 빛나는 원목 책장에, 고전부터 신간 그림책, 예술그림책, 해외 안 안려 진 특수 그림책 등을 돈이 되는대로 모으고 싶다는 거창한? 소망도 가지고 있다. (나뿐인가?)


덕후는 덕후질을 할 때가 제일 행복한 것 아닌가. 나는 그림도 글도 좋아하기에, 모아야 할게 두 배는 많을 것이다. (쿨럭!)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귀갓길 전철 안에서 겨우 앉아서 그날의 단상을 떠올려 보았다. 행복하고 뿌듯하고 고마운 마음만 가득했다.



무엇이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고, 그걸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가.

전문가든, 우리 같은 비전문가든 좋아하는 마음은 같으니깐. 그리고 하나같이, 사회에서 만난 그 나이대 보다 어린 얼굴들. 신기하게도, 나보다 나이가 있으셨지만 하나같이 해맑고 순수한 느낌이 있었다. 예술을 하는 이들이 때 묻지 않은 빛을 뿜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 보였다. 나이를 10년, 20년 더 먹어도 이렇게 고운 해사한 얼굴들로, 눈에 생기를 띈 채 만나고 싶다. 오래오래 뿌듯한, 덕후로 우린 살 것이다! 덕후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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