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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기동 Nov 13. 2024

아가야 놀자!

놀이문화

*법적 입양 수속을 밟으며


남편과 아이가 고향 마을에 간지 어느덧 한 달이 되어갑니다. 아이가 없으니 그야말로 텅 빈 절 집같이 고요하기만 합니다. 혼자 지내며 저는 그동안 미뤄 놓았던 사진을 정리하고 사진 몇 장을 인화하여 새 앨범에 담아 놓았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아이가 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럴 때면 사진을 바라봅니다.


남편이 고향에 방문한 목적은 복지부에서 담당하는 아이의 법적 입양 수속을 밟기 위해서였습니다. 남편은 생부모 (biological parent)의 서명, 증인들의 서명, 입양 부모의 재정적 안정 상태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의 발급 (부동산 등기부 등본, 은행계좌, 보험증권 등), 신문에 광고 내기, 변호사 공증, 법원 등의 업무를 보러 동분서주하면서 뛰어다녔습니다. 이런 절차의 어려움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필리핀에서는 법적으로 입양하지 않고 그냥 데려다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법적 입양》을 마쳐야만 하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루는 남편의 전화가 걸려 왔는데 매우 화가 나 있었습니다. 내용인즉, 큰형수는 입양을 방해하기 위해 마을에서 모함을 하고 다니고 있고, 조카들은 생부모의 집에 찾아가 아기를 다시 데려오라고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저희 집 옆집에 사는 큰형수는 과거에 마을 사람들에게 동성결혼을 비하하고 다녀서 나에게 야단맞고 반성문을 쓴 고약한 인물입니다. 큰형수와 조카들이 아기 입양을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자녀 없이 사망하면, 남편 명의의 집과 농장을 자신들이 차지할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게지요. 저는 법적 배우자로서의 권리가 없고, 그저 외국인에 불과한 저는 필리핀 법상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성결혼법이 필요하고 퀴어 가족들이 법적인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이보다 더 명확한 것이 있을까요? 그러나 아이가 입양되면 자신들의 재산 상속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랍니다. 입양을 응원해주기는 커녕 참으로 파렴치하고 양심을 저버린 무리들입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남편은 성당의 미사에 참석하여 하느님께 입양 수속을 잘 마칠 수 있었고, 아기를 저희 부부에게 주심을 감사드렸다고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음먹었지요,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아기를 빼앗아 갈 수 없다. 사랑하는 우리 아가, 엄마, 아빠가 지켜줄게’. 


*엄마랑 언니들 이랑 함께하는 놀이   

                                           

이제는 즐거운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인보는 소꿉놀이를 좋아합니다. 장난감을 이용하여 과일을 자르고, 숟가락과 포크로 인형에게 ‘맘마’를 먹여줍니다. 인형을 품에 앉고 ‘자장자장’해주고 ‘사랑해요’라고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 줍니다. 아이가 졸려서 잠투정을 부릴 때 저는 자장가를 불러 주기도 하고, 내 품에 안아 사랑해요 송을 불러주면서 저도 행복하기만 합니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앞으로도 엄마, 아빠가 좋은 말을 들려주고, 좋은 행동을 보여줘야 하겠습니다.


인보가 혼자서 놀 때는 애니메이션 음악을 즐겨 봅니다. 최근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 캐럴송을 보여주었더니 그만 거기에 푹 빠져서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줍니다. 산타와 루돌프가 삐약이를 신나게 만들어 봅니다. 인보가 돌아오면 크리스마스트리를 함께 만들기 위해 나무와 소품을 사다 놓았습니다. 빨리 오려 무나.


또한 이 녀석은 톰과 제리, 코코멜론, 상어송 그리고 한국 동요도 즐겨 보고 있습니다. 아이 덕분에 저도 제가 어려서 불렀던 추억의 동요들을 즐겨 듣게 되었습니다. 


동네 언니들은 가끔 우리 집에 와서 인보와 함께 놀아 줍니다. 이 언니들과  소꿉놀이, 레고, 인형을 갖고 노는 놀이를 합니다. 최근에는 고등학생 언니들의 흉내를 내어 핸드폰을 벽에 세워 놓고 걸그룹 댄스를 따라 하는 몸을 흔들어 댑니다. 이 모습을 보고 딸바보 찰스 아빠는 입가에 함박웃음이 활짝 피고 하하 허허 웃지요. 


*달려라 달려, 뛰어놀기

인보는 1년 6개월이 되어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아기 보호용 안전벨트가 있고 부모가 뒤에서 핸들을 조절할 수 있는 세발자전거‘부릉이’입니다. 부릉이 타자고 하면 자기 신발을 가져와 신겨 달라고 합니다. 이런 아이를 부릉이에 태워 읍내 공원에 함께 놀러 갑니다. 


     공원에는 놀이터와 넓은 잔디 광장이 있습니다. 인보는 광장을 운동장 삼아 마구 달립니다. 아이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몰라 그림자 수비를 해야 하기에 저도 함께 달려요. 아이는 비둘기 떼와 노닐고, 놀이터에서 그네와 미끄럼틀도 탑니다. 또한 우리는 운동장에서 공놀이도 합니다. 그리고 공원에서 해가 뉘엿뉘엿 지면 어른들이 모여서 줌바댄스를 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남편과 저는 번갈아 가며 아이들 보면서 춤추며 운동을 합니다. 이렇게 잘 뛰어놀면 밤에 아이가 잠도 잘 자더라고요.


*《어린이 건강》에 중요한 것들


아이가 오랫 동안 집을 떠나 있어 저는 매일 아이를 생각하면서 ‘오늘도 우리 삐약이 잘 먹고, 쉬아와 응아는 잘하는지, 잘 놀았는지, 간밤에 잘 잤는지?’를 중얼거리게 됩니다. 이 중얼거림을 통해, 건강 학문을 공부하는 저는 아동이 건강하게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유를 통해 어린이는 일상생활에서 수면, 음식섭취와 대소변 배설 그리고 놀이가 매우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린이가 잘 먹고 소화가 잘 된다면 충분한 영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섭취한 음식이 소화가 잘되고 쉬아와 응아로 잘 빠져나가야만 합니다. 한편 놀이는 신체적 활동을 통해 뼈와 근육이 튼튼해지고, 정서적으로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줍니다. 더불어서 놀이를 통해 신체 활동을 많이 한 덕분에 어린이는 밤에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됩니다. 이 4가지 요소는 성인의 건강에도 매우 중요하답니다. 이것은 제가 간호학적 건강의 구성 요소를 사유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육아는 저에게 학문적 이해를 깊게 하는데도 도움을 주는 녀석입니다. 앞으로 아이가 성장하면서 아동-청소년-성인-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 동안 튼튼하면 좋겠습니다. 


*한 해를 마치며, 고맙습니다     

행성인 벗 님들, 육아일기를 시작한 올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올해 저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저의 글재주로 육아를 기록하게 된 것이 너무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이 기회는 저희 부부와 인보에게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아이가 커서 성년이 되면 예쁘게 제본하여 선물로 줄까 생각 중입니다.


아무쪼록 새해 2023년은 퀴어에게 행복한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새해 행성인과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동안 저희 가족의 레인보우 패밀리를 읽어주셔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본 글은 필자가 소속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의 웹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게재일:2022년 12월 26일).행성인 웹진 https://lgbtpride.tistory.com/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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