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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Jan 12. 2017

#12 스스로에게 질문달기

외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통해 본 우리 모습

종종 호주에 있는 친구(남·29)와 전화통화를 하곤 한다. 안부를 묻는 것 이상의 여러 대화 주제로 1시간이 넘는 긴 통화다.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책이나 인터넷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호기심을 친구를 통해 해소한다. 

친구가 호주로 간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외국인들과 함께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세 번이나 사는 곳을 바꿨기에 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다. 이번 통화 주제는 한국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을 외국인이 다르게 느낀다는 것. 그리고 한국인들에 대한 그들의 인식 등. 그러면서 친구와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관한 생각을 나눴다.

한 번은 친구가 벨기에인 하우스 메이트와 일식집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고 한다. 주문을 하며 종업원에게 음식이 나오려면 몇 분이나 걸리는지 물었는데, 벨기에인 친구가 그것에 굉장히 놀랐다는 이야기를 하더란다. 식사를 하러 왔으면 음식이 언제 나오든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점원에게 정확히 몇 분이 걸리는지 묻는 것은 좀 무례한 행동 같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통상적으로 느껴지는 일이지만 종업원의 입장에서는 재촉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 터. 나도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은 날 저녁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진득하니 40분을 기다렸다. 기다림을 견딜 줄 아는 습관이야말로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최근 라틴국가에서 한국 대중매체를 통해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좋아졌다고 한다. 덕분에 친구도 브라질 등 많은 라틴 국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는데 그들은 종종 왜 한국인은 주로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어울리는지 묻는다고 한다. 또 커플도 왜 한국 사람들끼리만 이어지는지 궁금해 했단다. 

내 생각에는 한국인들은 같은 나라 사람들과 있는 것을 유독 편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언어의 장벽을 건너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대화, 정확히는 토론 자체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주입식 교육 탓인지 생각을 표현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 그런데 외국인들과 함께라면 자연스러운 토론이 빈번히 이어진다. 그들에겐 개인의 생각이 중요하지만 집단을 중시하는 동양 문화에서 그런 그들의 모습은 아직 우리에게 어색하다. 


학교, 회사, 사모임 등 사회에서 집단적 사고를 중시하기에 어떤 집단에 들어갈 때는 나의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집단에 얼마만큼 잘 물드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사회에서 내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괴짜처럼 보이기 십상이고,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도태될 수 있다.

결국 다양성을 줄이면서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 무난한 사회에서 우리는 그것이 매우 이상적인 양 생각하게 되었다. 갈등을 다루는 것은 익혀야 할 삶의 필수적인 기술이지만 갈등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불편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직업 때문인지 글을 쓰는 습관 때문인지 나름 생각을 잘 표현한다고 자부하는 나도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것이 꽤 성가시다고 느낄 때가 있긴 했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들은 ‘왜’라는 질문을 달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도 스스로 탐구하거나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내 과거 암흑기 몇 년 동안 왜 우울했는지, 정확히 왜 그렇게 느꼈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답은 하나가 아니지만 아직도 그 답을 생각 중이다. 그 답은 개인의 심리나 경험을 넘어 내가 거치고 몸담고 있는 이 사회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아직 미천한 경험과 지식으로는 본질을 알 수 없을 것 같다.


친구는 외국에서의 생활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 이면에는 한국에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녔어도 그 기간이 이력이 될 정도로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는 ‘나이’라는 객관적인 지표가 존재하기 때문에('그 나이 먹도록 여태껏 뭐 했어’라는 말이 상용적으로 쓰이는 것처럼) 이력서나 자소서에 써낼 ‘스토리’를 남이 보기에 그럴듯하게 만들어낼 수 없으면 누구나 취업은 두렵기 마련이다. 외국에 왜 몇 년이나 다녀왔느냐고 물으면 솔직히 개인적인 미련을 풀기 위해서라고 답할 때 어떤 인사 담당자가 ‘이 청년, 참 괜찮은 사람이군.’이라고 생각할까.

난 그런 친구에게 다른 길을 제시했다. 스스로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고. 아니면  다시 진로를 생각해보고 큰 목표를 그리라고. 그동안 그럴듯하게 입시를 넘어 취업이란 관문을 무난히 통과했음에도 다른 길에 들어선 것이 무슨 이유였는지 고민해보라고.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 똑같이 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으로 또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다고 말이다. 

결국 우리가 욕하는 이 나라, 외국으로 떠나는 청년들은 자신의 대우만을 생각한 것이 아닐까. 물론 이 사회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지만 생각해보면 사고까지 지배받는 것은 아니다. 간혹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쉬운 판단으로 이 사회를 싫어하고 이상을 꿈꾼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게다. 그런 사람들의 다반수가 정작 외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에서 습득한 통상적인 사고로 살고 있지는 않을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겐 언제나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청춘이기에 열렬히 고민하고 생각해 조금은 다르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나 하나의 행동만은 변화시킬 수 있다. 자발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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