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토끼 Jun 12. 2017

#24 혼인신고

-내 짝이라는 확신

혼인신고를 결혼보다 빨리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결혼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피할 이유가 없었다. 장난기 많은 우리 가족은 요즘 왜 이렇게 친정에 오래 머물러 있냐며 농담을 던진다. 동거도 아닌 법률상 혼인관계가 생겼을 뿐이다. 그러나 연애에 마침표를 찍고 평생의 짝을 만들었다는 성취감에 행복에 겹다.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할 때, 실없는 사람처럼 웃음이 샜다. 그동안의 구질구질했던 연애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몇몇 친구들보다 '먼저 간다'는 묘한 우월감이 들었다. 사주에서나 주변 사람들이 볼 때나 남녀가 바뀐 것 같다는데, 얌전치 못하게 감정 과다 상태인 내 자신이 호기로운 남성상 같이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 아는 비밀이 있는데 나는 일종의 결혼 시뮬레이션을 했다는 것. 청첩장을 찍지는 않았지만 결혼하려고 했었던 남자가 있었다. 그만한 역사가 있는 것이 놀랍거나 혹은 대수롭지 않거나 반반의 시선이겠지만 내게는 현재를 만족하게 해준 귀한 경험이다. 

인생 선배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흔한 말 중 하나가 "연애를 많이 하라"는 것. 그런데 애초에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그런 시행착오가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불필요한 연애 경험 따위 지겨워지는 때도 있었고, 왜 난 항상 이 모양이냐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러나 겪어보니 알 것 같다. 경험과 연륜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몸으로 부딪히고 확인해보지 않는 이상 주워들은 지식과 추측이 난무한 머리만으로는 확신을 얻기 어려웠다. 아마 나는 그 전의 연애까지는 혹여 기회가 와도 기회인 줄 모르거나 그릇된 선택임에도 억지로 버티는 어리석은 여자 아이였던 듯하다.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는 결혼을 몇 개월 앞두고 파투났다. 내 인생 가장 잘 한 선택. 머지않아 행운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던 내게 현 남자친구(남편)가 인연이 되었고, 그 전의 어떤 연애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만족감을 주었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 얻은 확신으로 현재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연애중인 법률상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늘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내 선택을 확신한다.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사람으로 배우고 사랑으로 성숙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23 관둘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