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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Sep 07. 2017

#30 헤어질 때를 아는 법

-나의 연애사

종종 과거 남자친구들이 꿈에 등장한다. 아마도 그들을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우기란 어려울 것이다. 한 번은 꿈 속에서 만난 전남친에게 덕담을 건넸다. 결혼한 소식을 들었다고, 잘됐다고. 결코 허세는 아니었다. 내 진심 중 하나다.

대학교를 다닐 때 나는 연애를 하며 비교적 헤어질 때를 알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아주 긴 연애를 하지 못했나 싶지만... 나의 이별방식은 이랬다. 연인은 자신들이 이별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때가 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흔히들 미끄럼틀 타듯 자연스럽게 이별할 타이밍을 맞는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고 나도 고칠 점을 찾고, 서로 맞춰가기로. 그리고 나서? 상대가 내 기대를 전부 맞출 리 없다. 세 번 정도의 기회를 준다. 이별의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거치고 나는 이러이러해서 우리가 헤어져야겠다고 말을 한다. 대부분 받아들이는 편이다. 상대가 잘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미 헤어질 뻔한 과정을 반복했고, 서로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뭐, 사람은 그런 애매모호한 상태를 오래 견디지 못한다. 결국 헤어지게 된다는 결말이지만 이미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련이 적다. 

스물일곱, 늦게 사회에 나와서 연애를 할 때 나는 한 번의 연애로 결혼할 것을 꿈꿨다. 소개팅으로 어렵지 않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크게 관심가는 상대는 아니었는데 일단 만나보자고 설득하니 단호하게 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5년만에 하는 연애라 어색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만난 지 얼마되지 않아 잦은 다툼이 있었고 관계가 삐걱였다. 그런데도 진작 이별까지 가지 못 한 건 어디선가 들은 말 때문이었다. 헤어지는 것은 만남을 지켜나갈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 나는 관계를 소중히 하니까. 전처럼 내 위주(전에도 결코 내 위주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기준이 강했다고 생각)가 아니라 소통하에 나아지는 관계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렇게 숱한 자기암시를 하며 인내심을 발휘했었나...

만난지 2년이 조금 안 됐을 때 이별을 말하게 됐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그에게 헤어짐을 고할 때는 솔직히 무서웠다. 혼담까지 오갔기에 여러 책임도 따랐다. 전 남친은 의외로 이별이 빠르게 받아들여졌는지 밤 12시쯤에 한 말을 금세 자신의 부모님에게 옮겼다. 그리고는 며칠 뒤 연락이 오긴 했는데 냉정히 끊었다. 

이번에는 때를 몰랐던 것을 후회했다. 부모님들이 어차피 헤어질 관계에서 쏟은 노력을 생각하면 그랬다. 내 기준이 흐렸고, 지나치게 맞추려 노력했기 때문에 그저 관계의 생명 연장일 뿐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고 본다.

이별 후, 29살이 되었는데도 의외로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다는 것이 내 얘기가 되었다. 가볍게 나간 모임에서 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 썸을 타긴 했는데, 알고보니 별로였다. 어찌어찌 만남이 끊겨 아쉬웠지만 그 짧은 만남이 마음을 냉정히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오래 지나지 않아 지금의 남자친구를 소개팅으로 만났고, 남들처럼 연애해 혼인신고까지 했다. 물론, 지금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나름의 노력이 필요했다. 상대가 정말 나와 미래를 함께할 지에 대한 확신을 얻는 데도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해야했다. 그런데도 지금에서야 안심할 수 있게 된 것은 불안한 마음을 들 때는 그것을 드러냈고, 서로 맞추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여러 번 쌓여 경험이 되니 결국엔 맞춰지는 관계라는 마음이 들었다. 또, 무엇보다 우리는 서로 이 관계에 대한 기준이 있었고 그것을 존중했으며 무너트리지 않았다. 

무튼, 전남친과 이별 후부터 현재까지가 내 인생의 황금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기대가 될 정도로 지금에 만족한다. 아마 내가 늦게나마 전 남친과 헤어질 때를 알지 못했더라면, 용기를 내 이별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는 정말 상반된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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