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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Jul 11. 2018

#51 어쩌다 어른

-근황

1. 임신일까

임신테스터기 두 줄.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 남편은 시부모님께, 나는 내 부모님께 알렸다. 네이버 임신주수 계산기로 따져보니 5주 4일쯤. 다음날 산부인과 오픈 시간에 맞춰 초음파 검사(일명 질초음파)를 했는데 아기집이 보이지 않았다. 자궁에 물 혹은 피가 고여있는데 피일 가능성이 높다고. 자궁외임신은 테스터기 두 줄에 아기집이 보이지 않기에 가능성이 있었다. 몇 주 기다려야 알 수 있는 상황. 무튼 혈액검사를 하고, 그날 저녁 전화로 검사 결과를 들었는데 임신수치에 해당된다고 했다. 걱정하던 자궁외임신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음주에 갈 때는 아기집을 확인해야 하는데... 문득 배 속에 아무것도 없을까봐 걱정이 된다. 그러나, 급격히 저하된 체력과 심한 소화불량 증상은 평소같진 않다. 어쨌든 가끔 드는 생각- ‘내가 운전도 하다니’ ‘내가 결혼을 했다니’ ‘이젠 내가 임신을 한 거야?’    


2. 17년 전 친구

나는 먼저 인연의 끈을 놓는 쪽이 아니었다. 그 역사의 출발점에 있는 한 친구가 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때 단짝. 우린 셋이 어울리며 어린 나이에 쌓인 시험 스트레스를 함께 풀곤 했었다. 그러다 내가 지망했던 중학교를 가지 못했는데 그 친구도 함께 그곳으로 배정이 되었다. 봉고차로 오가는 거리. 그런데 어느 날부터 친구가 나를 모른체 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투명인간 취급 되었다. 영문도 모르고 우리는 멀어졌다. 영미, 이름도 흔해서 SNS에서 찾기도 힘든 그 친구에게 메일이 왔다. 당시 일을 무진장 사과하는 내용. 이유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마치 어제 일인 듯 미안하다는데, 그냥 안되었다는 감정이 들었다. 지나간 인연들이 나를 참 많이도 괴롭힌 적이 있었는데 이리도 초연해진 것을 보니 새삼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정성들여 보낸 답장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3. 삼촌

곧 50줄에 접어드는 삼촌이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다른 삼촌까지 모시고 살며 자신은 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던. 그런데 난 그런 삼촌과 정말 맞지 않았다. 영 숫기가 없는 삼촌과 대화 기회도 적었다. 크고나서부터 삼촌은 우리에게 친근하게 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오는 말들이 내게는 좀 ‘깨는’ 말들이었다. 난 삼촌을 고리타분하며 고지식하고 편협하고 좁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 여겼다. 가족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인정하기보다는 내 주관이 먼저였나보다. 그리고, 얼마 전 삼촌의 생일. 나는 처음으로 삼촌에게 밥을 샀다. 엄연히는 남편이 주관한 자리였고 남편이 계산을 했지만. 삼촌은 매우 좋아했다. 돌아오는 길이 참 훈훈했다. 이제는 할머니와 둘이 사는 삼촌, 앞으로 조금 더 자주 뵈야겠다.    

4. 남동생

동생은 스물여섯. 내겐 아픈 손가락처럼 느껴지는 막냇동생이다. 둘째인 여동생과 내가 자랄 때는 학원도 많이 다니고, 부모님과 놀러도 잘 다녔는데 우리 막내가 어릴 때는 IMF, 한창동안 아빠가 백수였다. 더군다나 기 센 가족들이 늘 남동생을 누르는 탓에 발언권도 별로 없었다. 고로, 막내는 우리 가족에서 ‘불쌍함’을 담당한다. 늘(지금도) 심부름을 도맡아했던 착한 내 동생이 잘 되어야 하는데, 1년 넘도록 직장을 구하지 못해 큰일이다. 수능을 보고 지방사립대를 갈 수 있었는데 전문대를 간 것이 문제일까. 취직 좀 되었으면!    


5. 어른인 척

평생 자취 한 번 해 본 적 없다가 이제 남편과 새 집에 입주하는데 나름 할 일이 많다. 대출, 담보 등 그동안 생소했던 단어에 퍽 기가 죽는다. 또, 곧 늦은 신혼여행을 가는데 공항에서부터 어리바리한 내가 여행 일정을 계획해야 한다. (미루고 있음) 가끔 나는 내가 이렇게 먹고 사는 것이 참 신기하다. 보고서를 잘 쓰지 않아도, 회계를 몰라도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남들과 비슷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일을 잘 하는지 못 하는지도 모르겠다. 서른 한 살, 속은 더 이상 늙지 않는데 앞으로 닥친 모든 일이 어른의 영역인 것만 같다. 어른과 아이를 포용과 아집으로 구분한다면 나는 늘 후자에 가까웠는데. 요즘 들어 주위 사람들이 내 마음에 콕 들어와 살고 있다. 감쌀 대상이 많아지는 것, 그게 어른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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