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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Jul 11. 2018

#52 편한대로 살아요

-유부녀의 외침

1. 호칭

남편과 나는 동갑이라 서로 이름을 부른다. 이름 옆에 '씨'를 붙이거나 '여보''자기'라고 하는 것도 어색하고, 여느 커플처럼 '오빠'라고 하지도 못하는데 주위에서 볼 때 조금 이상한가보다. 남편한테 '너'라고 하면 안 된다며 종종 꾸중을 듣는다. 시부모님이 들으시면 큰 일 난다고. 그런데 우리 시부모님, 묵인하시는 분위기다. 뭐, ‘야’라고만 안 하면 될 일 아닌가.    

2. 아침밥

얼마 전 우리 부모님의 시골 집에 시부모님과 함께 놀러갔다. 그곳에 아빠 친구 한 분이 오셨는데 예비 며느리가 아들에게 아침을 안 해준다고 흉을 보았다. 엄마와 시어머님은 “우리는 아침을 원래 안 먹는다. 요즘 애들이 아침 먹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며칠 뒤 그 이야기를  내게 전한 엄마는 “근무시간도 널널한 그 아들이 알아서 사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아침- 챙겨주는 아내도 있고, 함께 챙기는 부부도 있겠지만 부부관계에서 서로를 향한 정성이나 성실도에 관한 척도라고 보이진 않는다.    

3. 방귀

나는 가끔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 “남편이 있을 땐 집에서도 화장하고 있어요”라거나 “방귀는 화장실에 가서 뀌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히다. ‘어쩌면 그렇게 불편하게 생활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뭐,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남편에게 사랑(예쁨) 받기 위함이라는 이유가 뒷받침 될 때는 썩 이해가 가진 않는다. 보통은 언젠가 형성된 스스로의 강박이지 상대가 요구한 것은 아닐 게다. 어떻게 보이고 싶은 욕구, 상대가 어떤 모습으로만 있어줬으면 하는 욕망은 그야말로 욕심이다. 그런 기대일랑 초반에 깨버리는 것이 편하다. 결혼이라는 장기전에서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마구 헝클어진 채로 자는 모습,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 대부분이 미워보이지 않고 봐줄만 할 때 우리는 ‘아직 사랑이구나’를 확인할 수 있다.    

4. 서로의 시간

결혼 초반에는 퇴근 후 저녁에 무조건 남편과 함께해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회사 일로 약속이 잦았고 그럴때면 나는 혼자가 됐다. 신혼의 꿈에 부푼 어느 날엔 정성들여 저녁을 차렸는데 남편이 미리 연락을 주지 않고 야근을 했다. 의도치 않은 지각이었지만 나는 화가 났다. 상대가 바라지도 않던 밥을 차려놓은 내 노력이 너무 허무했다. 이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자 조금 편해지기로 했다. ‘함께’를 너무 주장하지 않는 것, 그것이 편해지는 길이었다. 결혼 전처럼 친구도 만났다. 금, 토, 일 주말을 함께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약속이 생기면 미리 말하기로 했다. 다른 날들은 자유가 되었다. 물론 금요일에 약속을 잡기도 하고, 주말에 함께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무튼, 함께하는 시간들은 더 소중해졌다.    

5. 양가 어른들

서로의 부모님들을 멀리 두고 자주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애초에 우리는 가족중심적인 사람들이었다. 결혼 후에 가족이 어울릴 일이 많아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들은 어른 대접을 바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분들이라 뵐 때마다 크게 힘을 들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시부모님 댁에 갈 때 나는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 사실 시부모님께서 내려오시는 일이 더 많은데 거의 외식을 한다. 대신, 나는 조잘조잘 수다를 잘 떤다. 어머님은 이 부분 때문에 나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 과묵한 남편의 생활부터 우리가 어떻게 먹고 사는지, 왜 싸웠는지부터 하나하나 말을 한다. 우리 엄마한테도 나는 이렇게 시시콜콜 말을 한다. 그러니 내가 좀 게을러도 영 미워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내가 편한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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