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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Sep 19. 2018

#53 세상의 중심… ‘나→우리’

-결혼, 잉여생산물의 집착

나는 지구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가져온 것이 '잉여생산물'의 발생이라 믿었다. 답 없는 미래를 걱정하고 현재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라고.

스물아홉, 철없던 나는 미래를 생각지 않고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 (난 나름의 개똥철학도 잘 따르며 사는 편이다) 그런데 웬 걸,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나타났고 자유롭던 생활에서 발을 빼게 됐다. 사실 그 생활도 얼마 안 가 질리던 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한량이었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너무 많아 비교됐다.

서른하나, 결혼을 하고 생각보다 빨리 뱃 속 아기가 생겼는데 미래를 계획하다보니 잉여생산물이 꼭 이뤄야 하는 목표처럼 다가왔다. 현실보다는 꿈에 집착하던 나의 반전이었다. 어쩌면 현실의 틀에 맞춰 사고한 이면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소시민같은 내가 당장 먹고 사는 정도로 만족하기엔 미래가 까마득해 보였다. 

소신껏 산다는 것이 더 이상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당당하더라도 나의 선택은 남편과 미래의 아이에게 영향을 줄 터. 무엇보다 내게 삶의 최대치 행복을 가져다준 이 생활이 유지되길 바랐고, 혹시 모를 경제적 상황으로 찾아올 불행을 감당할 만큼의 배짱이 없었다. 결혼 전 품었던 생각처럼 나는 언제든 내 꿈에 몰두할 수 있고, 원한다면 혼자 훌쩍 외국을 다녀올 수 있는 위인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과 비교하며 어떻게 하면 가족에게 최선을 줄 수 있을 지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하다못해 남편이 성실히 직장생활을 하는 데 동기 부여가 될 요소는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새 차나 작게나마 모이는 재산 같은 게 보상이 되지 않겠는가. 사람이란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괘념치 않을 수 없으니까. 하물며 그것이 우리가 맞벌이를 하며 자녀와의 시간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육아 도움으로 양가 부모님의 독립적인 노후 생활을  방해하는 일이라 해도 다수가 그렇게 사는 게 현실이니. 가진 것 없고 잘난 것 없는 나도 조금의 애는 써야하지 않을까.

과거보다 생존의 의미가 무거워졌다. 나도 과거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변해가는 것이다. 당시엔 모른 척 했던 부모님의 치열한 생존 투쟁을 기꺼이 겪어내야겠다. 이 또한 내 소신이다. 

결혼은 이렇게 참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내가 중심이었던 생활에서 우리가 중심이 된다. 현실적인 문제를 절대 무시할 수도 없다. 너무 얽매이지 않아야겠지만 어느 정도 준비도 필요할 것 같다. 그래도 어쨌든 결혼한 지금이 좋다. 비단 신혼이기 때문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행복이 크다. 그러니 결과적으론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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