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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Oct 24. 2018

#54 나는 하나만 낳기로 했다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 자유

 처음 세상에 나올 날을 5개월 남짓 남겨둔 아이에게 미안한 일일지 모른다. 두 명의 동생을  두고 있고, 부모님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형제자매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도 잘 안다.

 그래도. 나와 남편은 하나만 낳기로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생각이 바뀐다는 말을 전혀 개의치 않을 만큼 우린 그 이상을 생각지 않는다. 아이를 갖지 않는 딩크의 단단한 각오와 다름없다. 할머니는 내게 셋은 가져라 하시고, 시아버지는 조심스레 둘은 있어야하지 않겠느냐 했지만 흘려듣는다. 주체인 우리가 주관대로 내린 순수한 결정을 고수할 계획이다.

 이 선택은 경험을 통한 판단이었다. 셋을 힘들게 길러낸 부모님께는 죄송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나의 자라온 환경에는 풍족한 사랑이 느껴지는 대신 희뿌연 가난이 존재했다. 자라고보니  웃음기 없던 엄마, 늘 정해진 길만 걷도록 했던 아빠의 모습은 힘들었던 경제적 사정에서 오는 것임을 알았다. 

 가난이라고 칭하기에는 지나치게 배부르고 보기에 평범한 형편이었지만 정신은 늘 그것에 영향받았다. 초등학교 때 수련회비를 어떻게 낼 지 온 가족이 고민한 적이 있고, 중학교 때는 소풍 전 옷을 사주지 않겠다는 엄마와 싸우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문제집을 사려고 부모님 지갑의 쌈짓돈을 뺏듯이 가져갔다. 

 ‘내가 못된 딸이었을까, 그저 또래처럼 행동한 것 뿐이었는데.’

 단편적인 기억을 넘어 우리 가족이 산 현실은 결코 가난을 이기지 못했다. 오히려 자격지심을 부렸을 뿐 제대로 돌파하지 않았다. 현실을 더 잘 깨달았으면 보다 많은 노력을 했을지 모른다. 나이마다 자연스럽게 스몄던 욕구들도 그런 사정을 넘어섰다. 대학 때 받던 한 달 용돈 16만원이 교통비와 밥값을 하면 남지 않아 대학생활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화장품과 옷가지를 사는 것이 중요했는데, 그 시간에 공부를 하고 취업에 힘썼다면 지금보다 많은 월급을 주는 직장을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돈에 제한되고, 아껴야 한다는 사고를 갖는것이야 동서양을 막론하고 재벌이 아닌 이상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절약의 의미는 다르다. 후자에게 절약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압박하는 행위일 수 있다. 

 그리고 부모가 후자라면 자식이 그에 따라 세계관이 좁혀들고 자연스러운 욕구에 죄책감을 갖게 된다. 기본적인 소비 외에 즐기는 영역에 해당하는 것들이 내 부모님은 하지 못했던 것이라면... 

 결혼한 지금, 나는 엄마의 일생을 생각해보며 참 고단했겠노라고 생각한다. 넉넉하게 살아보지 못한 엄마의 현재와 미래에 내가 크게 도움이 될 수 없어 안타깝다. 한 번 사는 인생에 사치는 아니더라도 자유를 누려 볼 가치는 있는데- 당분간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자유, 세상의 맛있는 음식을 즐길 자유, 가고 싶은 곳을 가 볼 자유, 내 안의 모든 바람이 원활히 이뤄져 반대의 경우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영향받지 않을 자유. 

 나는 앞으로 적어도 나의 힘든 사정을 비춰 자녀의 자유를 억압하고 싶지는 않다. 내 아이가  자유를 찾고 당당히 욕구를 드러내 세상과 소통하길 바란다. 

 그러니 아이 하나. 지금 우리에게 딱 좋은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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