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한 마음 한 줌
내게 아빠는 때때로 원망의 대상이 됐다. 결혼을 하니 엄마 입장에 더 가까워졌고 최근 직장을 관둔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티내진 않았지만 대책없이 사표를 낸 아빠 때문에 온 가족이 위기감을 느꼈다. 몫돈이 생기는대로 시골 땅과 집터를 꾸미는 데 쏟아붓듯 했던 부모님은 사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결코 자식들에게 의지할 계획은 없으셨지만 아빠가 해오던 다른 일과 앞으로 시작하고자 하는 일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아 보였다. 모두들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아빠가 조금 더 참아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 나날들이었다.
나는 종종 점심시간에 부모님 집에 들러 밥을 먹는데, 얼마 전 가보니 아빠가 방 안에만 계셨다. 여느 때처럼 크게 아는 체 하지 않고 밥만 먹고 나서는데, 혼자 어두운 방에 있을 아빠를 생각하니 왠지 부정적인 기운들이 떠올랐다. 몇 년을 집에만 있어본 경험이 있기에 부쩍 혼자 있어 싶어하는 아빠 마음이 어떨지 짐작됐다.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깝고, 까마득한 앞날에 불안과 두려움이 클 터였다.
외출해 있던 엄마에게 평소같은 전화가 왔다. 아빠가 이상하게 딱해보이더라는 이야기를 하니 엄마가 얼마 전 점 본 이야기를 했다. 아빠가 올해 운이 없었다고. 내년에도 조금 힘들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니 다만 건강하기만을 바라야 한다고. 답답한 상황에 희망을 찾아보려던 엄마의 점 집 투어는 묘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돌이켜보니 아빠가 유난히도 힘든 한 해를 나긴 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포기하듯 자리를 떠난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평소 자신감 넘치고 외향적이던 아빠가 철 모르고 회사를 나온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했음을 알게 됐다.
엄마도 이제 아빠의 사정을 이해하려는 참인 것 같았다. 아빠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힘들었을 거라고, 엄마라도 힘을 내겠다고. 자식 셋이 모두 직장 잘 다니고, 잘 나가는데 무엇이 걱정이냐고, 욕심 없이 조금 견디면 된다고 낙관했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 아빠를 응원하기 위해 계좌로 용돈을 보내고 통화를 했다. 쌓여있던 미움이 스르르 사라지는 기분이 들며 ‘가족은 서로 감싸는 거구나.’ 생각했다.
내심 나와 동생들 모두 얼마 안 되는 벌이에 부모님께 힘이 돼 주지 못해서 처지와 현실을 비관했었다. 그래서 더욱 이 상황에 화가 났었는지 모른다. 엄마 말을 듣고 보니 아빠를 감싸지 못하고 계산적으로 굴었던 스스로가 헛똑똑이 같았다. 또, 엄마가 우리들을 보며 위안을 받는다 생각하니 새삼 ‘자식이 부모의 자존심’임을 실감했다. 더 잘 살지 못함에 부끄럽기도 하고, 별 것 없는 자식을 좋게 봐줌에 감사하기도 했다.
나는 곧 있으면 자연히 부모가 될 테지만 아직 부모자식간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통찰할 만큼 성장하지 못한 ‘어른아이’였다. 그런데 내가 언젠가부터 갖고 있던 우리 부모님에 대한 판단, 그 중 부정적인 감정들을 드러내 풀 수 있을 만큼 부모님이 ‘어른’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우리 모두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모여 서로 위로받고 의지하며 살고 싶어했던 나약한 인간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실수가 반복되고 감싸는 과정에서 사랑으로 커가는 그런 것이 가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앞으로 가족들을 위해 마음에 얼마간의 여유는 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