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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Jan 21. 2019

#58 거짓 행복에 만족해 하지 말 것

-솔직한 표현으로 얻는 자유

나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나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고, 누구에게나 당당히 원하는 것을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무엇보다 내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에 충실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황이 어렵지 않게 해결 가능하다. 싫어하는 것은 불필요한 의무감, 부담감으로 억지로 행동하는 것. 왠지 하면 안 될 것 같은 솔직한 표현이 상대에게 먹힐 때 나는 비로소 조금 더 당당히 내 의사대로 행동할 발판을 쌓은 셈이다. 사실 웬만한 행동 개념은 탑재돼있고, 결코 안하무인이 아니기 때문에 착한 척 하지 않을 뿐 당당히 웃으며 원하는 것을 얻는 긍정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감정적으로 욱하지 않고 설득력 있게 다가갈 필요는 있지만.

생각해보면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도록 주어지는 대표적인 역할이 '엄마'같다. 최근에 가입한 ‘맘들의 카페’를 보면 가족들에게 맞추지 못해, 더 잘해주지 못해 안달인 착한 엄마들이 참 많다. 그 행동의 바탕은 사랑이지만 때로는 지친 것을 티낼 수 없고, 체력이나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에서조차 수행해야 할 일들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특히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엄마는 기분이나 몸 상태가 어떻든 가족들을 지극정성 돌봤고 아파도 누워있지 못했다. 집안이 깨끗하지 못한 것, 자식이 아픈 것, 하다못해 남편의 바깥 일이 잘 안풀리는 것조차 모두 아내의 탓으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 여자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가 바로 이제껏 봐왔던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부담 때문이 아닐까. 아직까지 현실에서는 육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포기하고 가사와 육아를 도맡으면서도,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에서 무시당하고, 자기 권리를 내세우지 못하는 엄마들이 많다.

뭐, 여자들의 현실이야 여전히 발전적으로 변하지 못한 부분이 많기는 하다. '거꾸로 가는 남자'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는데 어느날 남자가 여자처럼 취급받는 판타지한 현실에서 사는 내용이다. 남성위주의 사고로 자신만만 잘 나가던 주인공이 갑자기 변한 세상에서 제모를 하고, 비서 직업을 갖고 길에서 여자들의 추태를 대한다. 그리고 소신껏 이야기를 하면 여자가 강자가 된 사회에서 그의 말은 전혀 힘을 갖지 못한다. 반대로 해 놓았을 뿐인데 의식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 생각할 여지가 있으면서 풍자스럽고 코믹한 영화다.

비단 솔직하지 못해 힘든 것은 특정 성별만의 문제는 아니다. 권위주의, 집단주의로 물든 이 사회에서는 여전히 변하지 못한 과거의 잔재들이 많다. 꽉 막힌 문화에서 일상에서의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갖지 못해 힘들어한다.

요즘 ‘강신주의 다상담’ 2권 일·정치·쫄지마 편을 읽고 있는데, <‘노’라고 하며 살자!>는 제목의 프롤로그에 퍽 공감이 된다. 저자는 취업에 성공한 제자에게 언제는 가슴에 사표를 품으라고 말하고, 결혼을 해서도 ‘이 남자(여자) 아니면 나는 살 수가 없어’ ‘내 자식이 아니면 나는 살 수가 없어’라는 생각이 들 때 떠나야 한다고 말했단다. 항상 떠날 자유와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속내를 당당하게 피력할 수 있다고. 솔직하지 못해 힘들기 전에 일관성 있게 솔직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편하겠다. 지나친 부담과 의무가 인과응보가 되어 날 감싸기 전에.

실제로 자기 주관을 떳떳이 드러내면서 얻는 것이 많다. 그것은 어느 역할보다도 우선이 되는 스스로의 존엄성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본다. 내게는 ‘착한 콤플렉스’를 아직까지 놓지 못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아이는 ‘일단’ 자기 생활이 행복하다고 가정하는 것만 같다. SNS에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곧잘 드러내는데 평소 들은 바가 있는 나는 친구가 보내는 일상의 반 이상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든지 안다. 그러니 친구의 행복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친구가 솔직함을 감추고 참고 인내하는 힘든 노력의 대가를 얻기 위해 행복하다고 하는 것만 같다. 물론 친구가 처한 상황에서는 자기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하게 굴면 잃는 것이 많다. 직장에서의 관계, 꺾지 못하는 남편의 고집 등 여러 조건에 비췄을 때 친구는 이성적으로 그리는 좋은 결과를 위해 최적화된 자신을 만들어낸 것이다. 친구의 선택을 나는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런데 단순한 내가 생각해볼 때 내가 어떤 사람임을 드러내더라도 충분히 납득할만하다면 사람들은 그런 내 모습을 인정하고 의견을 들어준다. 그러니 착하고 유한 사람으로 보이려는 노력은 사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돌아가게 하는 방해물일 수도 있다. 결국 솔직함에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것 뿐이다. 솔직함을 통해 내 하고싶은대로 결과를 얻는 내가 이기적인 걸까.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솔직해지면 공평하지 않을까.

나는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괜찮아 보이려는 노력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괜찮게 느끼는 지점에 올라오면 좋겠다. 그러면 굳이 보편성을 핑계로 일반적인 잣대로 남을 평가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도 생기게 될 테고 지금보다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행동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충분한 자유를 갖고 솔직함은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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