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달리기할 때 오지 말고 꼭 무용할 때 와!

by Baumee

우리 집 첫째였던 나는 생일이 빨라 일곱 살이 되던 해 1983년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나누어 묶은 나는 엄마 손을 꼭 잡고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기 위한 하얀 면 손수건을 규정대로 직사각형 모양으로 반듯하게 접어 왼쪽 가슴에 옷핀으로 달고서는 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섰다. 우리 엄마가 학부형이 되던 순간이었다. 커다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운동장에 줄을 지어 선 입학식에서 나는 엄마를 행여 잃어버릴까봐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괜찮아’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안심시키셨다. 아직 날이 추워 얼어붙어 있었던 학교의 운동장에서 나는 3월 그렇게 입학식을 치르고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해 가을 열렸던 운동회에서는 운동회를 처음 경험해보는 나보다 왠지 엄마가 더 들떠있었다.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한 딸의 처음 운동회였다. 마치 엄마가 학생인 듯 언제 운동회 시작하느냐고 연신 물으시며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학년생들은 단체 무용과 달리기 시합에 참석하도록 되어있었다. 무용을 좋아했던 나는 1학년 전체가 운동장에서 연습하고 온 날이면 대형을 여러 번 바꾸어 멋있게 프로그램 된 단체 무용에 대해 엄마에게 이러이러하게 한다고 무용 부심을 가지고 들떠 자랑하곤 하였다. 나는 그 무용을 엄마가 꼭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습할 때마다 항상 단체 무용을 먼저 연습하고 그 다음에 학급 별 달리기 시합을 연습했기에 나는 실제에서도 무용을 먼저하고 달리기 시합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운동회는 전통적으로 항상 달리기 시합으로 시작한다. 그런 운동회의 순서를 아시는 엄마는 기다리던 딸의 운동회 날 아침에 집 가게 일을 돌보셔야 했으므로 “달리기 시합이 시작될 때 맛있는 것 싸가지고 꼭 갈께!” 하셨다. 나는 “아니야 아니야. 달리기 시합할 때 오지 말고 무용할 때 꼭 와.” 하고 학교로 향했다. 엄마가 운동회를 좋아하셨고 내가 연습한 모든 것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나는 그렇게 당부하고 기대하며 학교에 갔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운동회가 무용이 아닌 달리기로 시작하는 게 아닌가! 엄마한테 무용할 때 오라고 했는데... 달리기 할 때부터 나를 보고 싶어 했던 엄마에게 잘못 알고 말한 게 안타까워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엄마는 내가 달리기하는 것부터 보고 싶어 했는데 엄마한테 잘못 알고 말한 게 어린 마음에 가슴이 아리도록 미안하고 아팠다. 달리기 시합이 끝이 나고, 곧 1학년 전체 무용이 시작되었다. 나는 엄마가 오셔서 보고 계실 것을 알았기에 나는 엄마에게 보여주듯 하나하나 크게 동작을 하며 최선을 다해서 단체 무용을 했다. 이윽고 무용이 끝났고 자유시간이 찾아 왔다. 나는 앞줄에서 구경을 하시던 엄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엄마, 언제 왔어?” 나는 엄마를 발견하자마자 뛰어가서 말했다. “무용할 때 왔지!” 무용을 멋있게 끝낸 딸이 자랑스럽고 예뻐 흥분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엄마는 결국 딸의 첫 달리기 시합을 보지 못하신 것이다. 내가 잘못 말해서...


엄마는 달리기 시합을 할 때 일찍 오실 수도 있었지만 내가 무용할 때 오라고 신신당부하는 바람에 무용하는 시간에 맞추어 오신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운동회의 순서를 알고 계셨던 엄마는 내가 무용할 때 오라고 해서 가게 일을 조금 더 보다가 아니면 때마침 본의 아니게 가게 일이 바빠 무용할 때 오신 것 같기도 하지만 나 때문에 엄마가 달리기 시합을 보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실제로 딸의 부탁 때문에 무용할 때 오신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린 시절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두 남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중학교까지만 마치시고 집안 농사일을 도우셨다. 중학교로 끝나버린 학창시절로 엄마는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셨다. 그 중학교 졸업 이후 맞이한 딸의 초등학교 운동회가 당신이 오랜만에 맞는 그리웠던 학교 운동회였기에 학생처럼 좋아하고 기다리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별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그날의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동안 엄마는 학급의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스승의 날에는 자청하셔서 일일 교사를, 학급에서 필요한 청소 도구나 물건이 있으면 솔선하여 다른 학부형들과 함께 물품을 마련해서 지원하시곤 하셨다. 지금도 일일교사를 맡아서 당당히 교단에 올라 자신감 있게 반 전체 아이들에게 선생님께 ‘감사 편지쓰기’를 지도하시던 엄마의 멋진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멋지게 해내셨고 실로 훌륭한 교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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