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물을 보면 친근감이 들고 철이 자석에 끌리는 것처럼 가까이 가게 된다. 식물들을 보면 편안해지고 맑고 청정한 공기가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 같아 신선한 느낌도 받는다. 그리고 또 하나, 엄마가 생각이 난다.
엄마는 집 옥상에 작은 텃밭을 일구어 상추, 파, 고추 등을 심어 길러 가족들 밥상에 올리셨고, 집안의 화초들을 무척 사랑하고 가꾸시는 분이셨다. 국화, 고무나무, 난...
집에는 잎이 넓은 인도 고무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엄마는 다른 식물과 마찬가지로 이 고무나무를 무척 아끼셨는데 자주 잎을 한 장 한 장 닦아주시며 윤기 나는 잎을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이 고무나무는 어쩌다 상처가 나거나 잎이 떨어지면 흰 우윳빛 액체를 내었는데 나는 신기한 눈으로 그 액체를 바라보곤 했다. 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는 각종 화분들을 놓고 어항을 놓아 마치 작은 정원처럼 꾸며놓았는데 보기가 매우 좋았다. 보기는 좋았으나 그때만 해도 나는 식물에 별로 관심이 없어 엄마가 식물들에 왜 그렇게 애정을 기울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귀찮고 피곤하시지도 않은가?
농사를 짓는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라신 엄마는 원래 고운 성품으로 풀 한 포기, 나무 한 가지에도 그 자라는 모습을 신통하게 여기고 아끼고 가꾸셨다. 키우시던 식물이 꽃이라도 내면 엄마는 “애들아, 이것 봐라. 이 꽃 너무 예쁘게 난다. 어머 기특하네.” 하며 마치 아기를 들여다보듯 한참을 들여다보셨다. 특히, 가을이 되면 국화 화분들이 어김없이 집 거실에 들어왔다. 각양각색의 국화들은 집안 곳곳에 진한 국화꽃향기를 퍼뜨리곤 했다. 날씨가 추워져 국화들이 지면 어찌나 허전해하시던지... 식물에 관하여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니셨던 우리 엄마였다.
뿐만 아니라 동네 다니는 교회의 강대상을 위한 꽃꽂이를 도맡아 하실 정도로 꽃과 식물에 대한 애정이 강한 분이셨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토요일이면 스스로 분주하게 꽃 도매상을 찾아가 주문해놓은 꽃을 받아오시고 그 와중에 마주치는 친구 분들이랑 생기 있는 이야기를 나누시며 사는 기쁨과 애로사항들을 나누신다. 그리고 교회에 오셔서는 커다란 예배실의 강대상 앞에 앉으셔서 사온 꽃과 재료들을 죽 펴놓으시고 꽃꽂이라는 창작활동을 열심히, 열정적으로 하신다. 엄마는 끊임없이 꽃꽂이를 배우며 연구하셨고 틈이 나는 대로 주말 꽃꽂이를 위한 도안을 종이에 그리셨다. 도안에는 그날 사용될 꽃꽂이의 재료들과 모양, 크기, 각 꽃들의 배치 위치와 각도들이 상세하게 메모되어 있었다. 매주 완성된 꽃꽂이는 사진을 찍어 한 장 한 장 자신의 작품들을 포트폴리오로 남기셨고 후일의 꽃꽂이를 위한 참고자료로 사용하기도 하셨다. 강대상을 비롯한 교회 곳곳에 놓여있는 엄마의 꽃꽂이들을 보면 정말 아름답고 엄마 손길 가득한 그 작품들이 매우 자랑스러웠고, 매주 꽃꽂이에 대한 사람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나와 동생들은 꽃꽂이를 하실 때면 집중하여 다른 것에 여념이 없으셨던 그런 엄마의 주변에서 피아노를 치거나 예배당 안을 돌아다니며 놀곤 하였다. 꽃들을 비롯한 식물은 그렇게 나에게 있어 엄마처럼 친근하고 정이 있는 존재인 것이다.
오늘도 쇼핑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자석처럼 식물 가게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여러 가지 탐나는 어여쁜 화초들이 여기저기 생기 있게 옹기종기 모여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온갖 화초들에게서 쉬 눈을 떼지 못하고 기어이는 한두 점 손에 들고 나온다.
엄마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화초들. 지금도 그 다채로운 꽃과 화초들 가운데서 환한 웃음을 지으셨던 엄마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눈에 선하다. 자연을 사랑하시고 꽃과 같은 성품을 지니셨던 엄마. 나는 화초를 보면 그와 같은 성품들을 마음껏 소환하여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좋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식물을 기르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