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아, 꼭 필요한 사람이 되거라!

by Baumee

엄마는 어릴 때부터 우리들에게 책을 손에 쥐어주곤 하셨다. 어린 나는 장난감보다 주로 책을 가지고 놀았고, 책을 보고 앞장 뒷장 넘기며 책을 읽듯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엄마는 어린 나를 가슴에 안고 책을 읽어 주시곤 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항상 읽으시는 성경책 속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 삼손 이야기, 노아의 방주, 다니엘 이야기 등을 재미있고 다정한 목소리로 들려주셨다. 나는 그 품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만히 그 이야기들을 듣곤 했는데 가끔 순진하고도 엉뚱한 질문을 해 엄마를 웃게 만들기도 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사자랑 이야기하고 있었어?”


그리고 얼마 후 우리 손에는 이솝 우화의 토끼와 거북이, 북풍과 태양, 여우와 두루미 등의 그림책이 들려 있었다. 우리들이 그 책들 속의 그림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으면 엄마는 다가와 그 책들을 읽어주셨다. 역시 발랄하고 재미있는 목소리의 스토리텔링으로 말이다.


“어느 날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가 있었어요. 그 나그네는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이를 본 바람은 태양에게 말했어요. ‘태양아, 우리 중 누가 센지 저 나그네의 외투를 벗겨보기를 하면 어때? 나그네의 외투를 먼저 벗기는 쪽이 더 강한 거야.’ 태양은 대답했어요. ‘그래.’ 바람은 힘껏 바람을 불기 시작했어요. 후~~~ 바람이 불자 나그네는 ‘아, 춥다’ 하며 외투를 여미기 시작했어요. 이를 본 바람은 더 세게 후~ 후~~ 하고 바람을 불었어요. 그러자 나그네는 더욱 외투를 꼭 잡았어요.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나그네는 외투를 더욱 강하게 붙잡을 뿐이었어요. 바람을 더 세게, 더욱더 세게. 더 더 세게 불던 바람은 마침내 지치고 말았어요. ‘태양아, 안 되겠어. 나는 내가 바람을 불면 불수록 저 나그네는 옷을 더욱 강하게 외투를 틀어쥐고 있을 뿐인걸. 이제 네 차례야. 한 번 해보라고. 안될걸?’ 태양은 미소를 짓더니 따뜻한 햇빛을 나그네에게 쬐기 시작했어요. 나그네는 ‘어, 날씨가 왜 그러지? 바람이 멈췄네.’ 태양은 더욱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햇빛을 나그네에게 내리쬐었어요. 나그네는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어요. 태양이 미소를 더욱 환하게 지을수록 나그네는 더워서 땀이 나고 흐르기 시작했어요. 참다못한 나그네는 ‘아, 더워’ 하며 외투를 벗고 말았어요! 마침내 태양이 이긴 거예요. 태양은 ‘어때? 내가 이겼지?’ 하고 바람에게 말했어요. 바람은 부끄러워 슬며시 가버렸답니다.”


1인 다역의 엄마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우리들의 가슴을 두근두근 거리게도, 흥분하게도, 때로는 생각에 잠기게도 했다.


우리는 그 그림책의 세계에서 생각하고 상상하며 마음껏 헤엄을 쳤다. 나는 엄마가 주신 책들을 보며 자주 골똘히 생각에 잠기고는 했는데 그렇게 해서 책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내가 글을 배우게 되어 집에 있던 그림책들을 스스로 읽을 수 있게 되자 엄마는 글이 조금 많은 책을 사다 주셨다. 나는 그 책도 곧 다 읽고 엄마에게 갖다 드렸다. 그러자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글이 그림보다 조금 더 많은 책을 구해주셨다. “이거 다 읽으면 엄마가 또 사줄게.” 다 읽으면 또 한 권, 그것도 다 읽으면 또 한 권... 그렇게 해서 나는 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책은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옆에 있는 그림들도 나의 상상력을 도왔다. 주인공들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었고, 주인공들의 슬픔이 내 슬픔과 심란함이 되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옆에서 누가 불러도 모를 정도로 몰입을 하였다. 책은 현실에서와는 다른 엄청 다양한 이야기들과 주인공들의 현실이 있었다. 나는 그 주인공들과 하나가 되어 기뻐하기도 뿌듯해하기도 안도하기도 분노하기도 했다. 책은 마치 엄마의 호흡 그리고 품과도 같았다.


내가 한 권 한 권의 낱권 책들을 줄줄이 읽어내자 엄마는 한국과 세계 다른 여러 나라의 위인들의 전기집을, 그 마저 다 읽어내자 더 큰 문학 전집들을 사주셨다. 나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아무런 걱정 없이 책에 빠져들었고, 엄마는 그런 내 옆에 과일이 담긴 접시를 가만히 놓고 가시곤 하셨다. 나는 학교에 갈 때도 책 한 권씩은 꼭 가방에 넣어갔다. 그러면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느새 책벌레가 되어갔다. 이렇게 되니 학교에서 주는 교과서는 더 이상 교과서가 아니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책에 불과했다. 학교 책상에서 읽는 책이었고 선생님은 그 책 내용을 재미있게 들려주는 이야기꾼이었다. 선생님들은 가끔 교과서를 보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저렇게 할까?’




엄마는 책을 읽으시면 그것들을 실천에 옮기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생활 곳곳에 적용하고 활용하셨고, 좋은 구절들이 있으면 화장실에, 방문에, 거울에 그 구절들을 정갈한 글씨로 써서 붙여놓으셨다. 화장실에서 변을 보며 읽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한번 보고, 외출하기 위해 거울을 볼 때면 또 읽었다. 그 정갈한 글씨의 구절들은 우리 가족에게 늘상있는 마음의 양식이었다. 한 번은 엄마가 두꺼운 종이에 좋은 글들을 손수 손글씨로 써서 그것들을 사과 모양으로 본을 따 일일이 오리신 후 나보고 문구점에 가서 윗 꼭지 부분에 구멍을 뚫어오라고 하셨다. 그 글 조각들을 집안 곳곳에 걸어놓기 위함이었다. 나는 한 묶음의 그 두꺼운 종이들을 들고 문구점으로 갔다. 그런데 문구점 아저씨가 구멍 뚫는 기계를 잘못 선택하여 송곳 같은 것으로 한꺼번에 눌러 찍는 바람에 사과의 꼭지 부분이 일그러지고 어떤 것은 뜯겨 나갔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그것을 그대로 엄마에게 갔다 드렸다. 엄마는 잘못된 도구로 구멍 뚫기가 된 것을 아시고 다시 문구점에 직접 가셔서 깨끗하게 뚫어지는 기계로 그 위에 다시 구멍을 잡아 오셨다. 내가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엄마한테 매우 많이 미안했다.

이후 그 사과 종이 속의 글들은 집안 곳곳에서 모든 가족에게 탐스럽게 먹음직스러운 마음의 양식이 되어주었다.




학교 시험이 있을 때면 나이 터울이 적은 나와 첫째 동생은 둘이 나란히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곤 하였는데 어느 날은 엄마가 들어오시더니 어떤 글씨가 쓰여있는 액자를 우리에게 주셨다.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이렇게 쓰여있었다. 공부를 하는 우리 자매를 향한 엄마의 염원이었다. 나는 당시 이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창피하게, 할 일도 많은데 그렇게 넘겼었다.


"얘들아, 세상에는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단다. 너희들은 꼭 필요한 사람이 되거라.”

사춘기였던 나는 엄마의 말이 창피하고 어색해 그 액자를 무심코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놨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있어 서랍을 열 때마다 그 액자는 손에 걸리며 한 번씩 내 눈에 띄었다.


우리 자매는 학교에서 반장과 부반장 등 임원을 꾸준히 도맡아 했고 학기 중, 학기 말에는 성적 우수상을 꼭 받아왔으며, 그 외에도 각종 미술 대회, 백일장, 음악 경연 대회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트로피와 상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그 액자에 쓰인 그것은 나의 가슴속에 씨앗이 되어 오늘날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마음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는 말이 되었다.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엄마의 자식들에 대한 책을 통한 정서적 교육과 사랑은 팍팍한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하든지 본질을 보고 사심과 사견에 휘둘리지 않으며 세상의 잘못된 면면들에 굴하지 않는 올곧은 마음과 뚝심을 갖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우리 자매들에게 정서적 위대한 유산이 되어 우리 속에 남아 빛을 발하고 있다.

엄마, 보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식물을 키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