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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Aug 29. 2023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용기 내어 올라간 체중계, 하지만 배터리가 없어 측정하지 못한 오늘 아침의 일을 떠올리며 역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우연이라고 생각하며 아침을 열었습니다.

  주말 동안 본 드라마의 여운이 여전히 가시시 않는 월요일입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9월부터 고전 읽기 모임을 시작해요. 첫 책으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드라마로 먼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빠졌어요. 아주 많이요. 밤을 새워가며 이틀 만에 정주행을 했지요.

  3년 전, 2020년 8월 31일부터 16부작으로 방송된 드라마더라고요. 요즘 같은 날씨에 딱 어울리는 드라마에, 몇 해 전에 다녀온 콘서트의 추억까지 떠오르면서 그 감동이 아주 깊어졌습니다.

  '이 멋진 드라마를 몰랐으면 아쉬울 뻔했잖아...'

  지금이라도 잔잔하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 속에서 젊은이들의 번뇌와 순수한 사랑을 담은 이야기를 알아서 참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매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의 음악을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월클' 피아니스트 박준영을 그리면서 말입니다. 맞아요, 지난 주말에 블로그에 글로 한 번 풀어냈지만 자꾸만 이야기하고 싶은, 저는 지금 드라마 과몰입 상태에 있어요.

  '이대로 오래 계속 머물고 싶어요.'


  클라라와 슈만의 사랑 그리고 브람스와의 우정 이야기는 처음 들을 때보다 다시 꺼내니 더 낭만적입니다. 제가 처음 이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2019년이었어요. 영광스럽게도 우리나라 대표 성악가인 임선혜 소프라노가 진행한 클라라 슈만 탄생 20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였죠. 음악회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큰 감동을 받고 와요. 가끔은 악기를 잘 다루고 싶은 마음도 들게 하지만, 그저 듣고 보며 즐길 수 있는 게 가장 큰 축복이라는 굴레를 씌웁니다. 그래도 학창 시절 음악에 음악가들의 열정을 알았다면 아마 더 깊은 애정과 확신으로 피아노를 대했을까, 궁금하고 아쉽기도 해요. 아무튼 피아노를 무척 사랑했지만 '체르니 30번까지'라는 아빠의 규칙에 한 번의 반항만 하고 작별한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다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돌아갈게요.

  공항에서 각자의 친구를 마중 나온 '월클' 피아니스트 박준영(김민재 배우)과 바이올린 전공 음대생인 채송아(박은빈 배우)은 우연히 마주칩니다. 그리고 준영은 경후문화재단에 들어갈 때 무슨 시험을 봤냐고 묻지요.

  송아는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의 이야기를 썼다고 대답했어요. 그 대답에 준영은 이렇게 말합니다.

  "테마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나 봐요."

  송아가 대답해요.

  "아니오. 세 사람의 우정이오."

  그리고 송아가 다시 물어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저는 2019년 가을,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의 이야기를 클라라의 관점에서 들었고 깊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세 가지를 들 수 있어요. 첫 번째, 그날의 콘서트는 클라라 슈만(1819.9.13~1896.5.20)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 콘서트였기 때문이죠. 두 번째, 제가 여자라서 클라라의 삶에 저를 겹쳐 놓기 보기가 훨씬 쉬웠습니다. 세 번째, 가사와 육아에 자신의 꿈을 접어두었던 클라라의 좌절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슈만은 결혼 전 클라라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당신은 자신과 가정, 남편을 위해서만 살아야 하오.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곧 잊힐 테니 두고 보시오. 아내란 예술가보다 더 고결하오. 당신이 대중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한다면 그거야말로 내 가장 깊은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오.

  그리고 슈만이 병든 시기, 클라라는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는 한때 창작에 재능이 있다고 믿었지만, 그런 생각을 단념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제 마음은 안타깝고 슬픈 마음 그 이상이었어요. 꾹꾹 눌러 놓은 깊은 마음속 있는 클라라가 느낀 절망의 버튼이 제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2019년의 그날도, 드라마를 보고 음악을 찾아 듣는 2023년의 오늘도 이유를 모를 눈물이 자꾸 흘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말로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은데 아직도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슈만이 세상을 떠난 뒤 클라라는 슈만의 작품을 알리며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클라라가 그의 음악적 재능을 두고 '하느님께서 직송으로 배달해 준 선물'이라고 표현했던 브람스와의 인연은 브람스가 동경하던 스승 슈만을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14살 연상인 클라라에 대한 마음은 그의 예술가적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주옥같은 명곡을 남기게 했습니다. 또 슈만이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클라라와 남편 슈만의 중개자가 되었으며, 슈만의 집안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40년간 스승의 아내와 사랑인 듯 우정인 듯 평행선을 걷던 브람스는 클라라가 세상을 떠나고 11개월 뒤 간암으로 그녀의 곁(?)으로 갑니다.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의 이야기는 늘 영화 같아요. 슈만, 클라라, 브람스의 삼자대면이 아니라 일대일로 만나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드라마는 세 음악가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브람스'처럼 보였던 피아니스트 박준영이 알고 보니 '클라라였나?' 싶은 생각이 들 때면 다시 보며 새롭게 느끼고 싶어지는 고전 같은 드라마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모든 게 좋았던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였지만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역시 피아노 연주입니다. 개인적으로 피아노 소리를 좋아해서 준영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못 보신 분에게는 실례이지만 가장 마지막 회에서 준영이 송아를 위해 연주하는 <헌정>은 정말 마음속에 박제해 두었어요. 특히 이 연주는 진짜 '월클' 손열음 피아니스트가 드라마를 위해 특별히 녹음해서 전달한 것이라고 해요.


  요즘 매일, 그것도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는 항상 듣고 있습니다.

  제가 요즘 푹 빠진, 가장 좋아하는 음악입니다.

  SCHUMANN-LISZT Widmung | Yeol Eum Son (손열음 | 슈만-리스트 헌정) - YouTube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음악은 송아의 '슬픈' 생일에 말보다 음악을 먼저 건넨 준영이 친 월광+생일축하곡입니다. 자랑스러운 '월클'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갈라쇼에서 보인 적이 있더라고요. 드라마에서는 송아가 가장 좋아하는 <월광>과 생일 축하의 마음을 담은 슬프고 기쁘고 행복한 장면인데,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곡은 밝은 선물 같은 느낌을 줍니다.

  

[ #DG120 갈라 콘서트 조성진 DG 120 Gala Concert in Seoul - Seong-Jin Cho] (Encore) Moonlight, Happy Birthday - YouTube

  

  세 번째 곡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인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작은 꿈)>입니다. 박준영 역을 맡은 김민재 배우는 연기를 위해 많은 곡들을 연습했고, 직접 연주도 했다고 해요. 그중 하나가 이 곡입니다. 드라마에서도 가장 비중 있게 언급되는 곡이기도 하고요. 마침 '제 마음속 브람스'인 박준영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사심을 담아 골랐어요.


김민재, 부드러운 선율로 연주하는 ‘트로이메라이’ㅣ2020 SBS 연기대상(sbs 2020 drama)ㅣSBS DRAMA - YouTube


  이제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으러 가야 합니다. 여전히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인 박준영에게 빠져있지만 이제는 폴의 이야기도 들으러 가야 해요.


  책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으로 끝나지만 드라마는 '?'를 쓰고 있어요. 책을 끝까지 다 읽는다면 다시 두 작품 속 연결점을 찾아보고, 제목이 주는 작은 차이점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책을 모두 읽는다면 다시 한번 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글을 쓸 수 있길 바라봅니다.


그날 우리가 연주한 곡은 '자유롭지만 고독한' 소나타였지만,
브람스가 좋아했던 문구는 'F.A.F', '자유롭지만 행복하게' 였다는 것을.
나는 아주 나중에.. 알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채송아


 

 힘든 순간도 있지만 자유롭지만 행복하게!

 여름의 끝자락에서 함께 가을을 기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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