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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Sep 07. 2023

심심하지 않은 사과

  요즘 아침이나 가벼운 점심 메뉴로 즐겨 먹는 것은 땅콩버터와 사과입니다. 이 묘한 조합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공부왕 찐천재'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최화정 님이 하루 일과를 공개해 준 영상에서였습니다.

  상상으로 만든 입 안을 겉도는 느끼한 땅콩버터와 상큼한 사과의 조합은 미녀와 야수 같았어요. 하지만 한 입 먹어 본 이석로 PD님까지 엄지 척! 을 올리는 바람에 바로 구매각으로 옮겼습니다. 유튜브 화면을 캡처하고 확대를 해 최화정 님께서 드신다는 100% 땅콩버터로 말이죠.

  

홍로와 슈퍼너츠 피넛버터 크런치


  씹히는 맛이 있어 더 좋은 '슈퍼너츠 피넛버터 크런치'입니다. 제주도에서 가장 빠르고 저렴한 배송은 쿠팡이라 가격 비교도 않고 쿠팡에서 구매했어요. 두 병을 사면 하나만 살 때보다 싸서 두 병을 구매했습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숟가락으로 먹을 만큼만 던 다음 숟가락에 남은 피넛버터를 맛보았어요.

  "윽, 이거 뭐야?"

  호기롭게 두 병을 산 이틀 전의 밤이 원망스러웠어요. 느끼하고 입 안에 달라붙는 끈적함에 몸서리를 쳤지요. 냉장고에 있는 사과도 깎았습니다. 음, 잘 익은 사과향이 그냥 먹어도 맛있습니다. 그래,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굳이 땅콩버터를 두 병이나 샀어요. 이를 어쩌죠?


  그런데 말입니다. 한 입은 낯설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아주 중독입니다. 건강한 땅콩에서 나온 견과류의 단단한 에너지가 내 몸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기운이 없는 날, 달콤하고 상큼한 게 생각나는 날에 딱이었어요. 오늘 아침에는 가을 사과인 홍로와 함께 상큼한 한 접시를 했습니다. 껍질채 또는 껍질을 벗긴 사과를 아주 얇게 썰고 그 위에 땅콩버터를 올려 먹는 '부먹'과 얇게 저민 사과를 땅콩버터에 찍어 먹는 '찍먹'이 있습니다. 저는 크런치가 있는 땅콩버터를 사과에 올려 먹는 '부먹파'입니다.

  너무 맛있어요. 땅콩버터는 그냥 먹을 때보다 사과와 함께 먹을 때 더 맛있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비장의 맛을 사과와 만나야 꺼내놓는, 선별적 낯가림의 소유자인 제 모습과 닮았습니다. 겨울 부사와 먹을 때는 잘 익은 사과의 맛과 어울려 땅콩잼을 올린 사과 파이 같았는데, 홍로와 먹으니 상큼한 샐러드식 같습니다.


  

  '사과'를 떠올리면 심심하지 않은 일화가 또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일인데 긴 시간이 흘러도 사과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을 보니 무척 억울한 모양입니다.

  "사과 먹자!"하고 아이를 불렀는데, 대구 토박이인 남편이 "사과가 뭐고, 사과지"라고 무안을 주는 겁니다. 들어보니 제 '사과'에 억양이 틀렸다는 겁니다.

  '대구 사투리가 무슨 표준어라도 되나, 어디서 지적질이야?'

  '설거지 끝내자마자 간식이라고 준비했는데 그런 대답이 어디 있는데?'라고 그때는 어이가 없어서 못한 대답을 지금이라도 적어 봅니다.

  오늘 아침에 사과를 깎은 김에 봉인되어 있던 그날의 아픔을 꺼내보았습니다. 그리고 내친김에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 표준어 발음을 들어보았습니다.

  

사과: 사과나무의 열매

사과: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

   

 두 가지의 단어를 다 찾아 발음을 들은 끝에 내린 결론은 '네, 틀리긴 했네요.'

 제 사과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는 뜻의 '사과(謝過)'의 경기도 발음이었네요. 그렇다고 남편의 사과가 표준어였던 것도 아닙니다. (통쾌하군요!) 그는 사과나무 열매의 사과(砂果)를 발음했으나 경상도 발음이었습니다. 참고로 네이버 국어사전 '사과' 발음에서 경상 2와 똑같습니다. 그 발음이 표준어와 비슷하게 들린다고 해도 틀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로 제 결론은요, 누구는 가을 햇살만 쬐며 룰루랄라 놀고 있는데 홀로 집안일을 하다 시간을 쪼개 사과를 깎아 놓은 사람에게 사과하세요!

  음... 음, 주어는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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