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사는 무지개인간은 지금 서울 여행 중입니다.
서울 여행 1일 차, 일본어를 더 많이 들었어요.
최근 몇 년 간의 여름휴가는 주말을 포함해 3일, 길면 4일이었어요. 그런데 올해는 정말로 '러키비키'입니다! 휴가를 평일 3일, 주말을 포함하면 5일이나 쓰기로 했거든요. 이렇게 귀한 휴가는 계획이 있든 없든 설렘과 기대를 가득 채워줍니다. 어디로 떠나볼까 고민을 하며 목적지를 팔도강산으로 정했다가 취소하길 반복하다 결국 서울에 와있습니다. 오늘 서울의 날씨는 약간 흐리고 습도가 높지만 제주 섬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지요.
'제습기 들고 왔으면 하루에 두 통씩 가득 차는 물 버리는 재미가 쏠쏠했겠는데?'라는 엉뚱한 생각도 했지요. 맞아요, 저는 지금 초긍정 구간에 머물러 있습니다.
휴가는 정말이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마음의 기저에는 너그럽고 즐거움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주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제 눈에만) 여행의 즐거움을 뿜어내며 달리는 자동차를 만날 때가 많습니다. 그 차들은 '하, 허'가 아니라 '무척 신남' 또는 '설렘 가득'의 뭉게구름 풍선을 달고 달리는 것 같지요. 특히 조수석에 탄 그(녀)는 윈도 틴팅이 된 창문을 열고, 밖으로 손바닥을 펴서 제주의 바람, 제주의 햇빛, 제주의 공기라도 잡으려고 하지요. 물론 저는 따라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언제 저런 마음으로 제주를 느꼈더라, 라며 기억을 더듬어 보지요.
같은 장소에서 느끼는 온도가 다른 것은 여행의 즐거움 덕분이지요. 오늘은 제가 936만 6,283명(2024년 6월 기준) 서울시민들의 일상에 설레는 마음을 들고 왔지요.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 따뜻한 시간을 보낸 터라 충전은 완료되었어요. 그래서 에센스처럼 여행할 결심만 방울방울 모아 서울로 왔답니다.
여행의 시작은 N서울타워입니다. 10년 전, 오늘처럼 무척 더운 여름에 다리가 아프다는 어린 (사)춘기를 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왔는데 이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가끔 여행 장소를 떠올리며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 있을까 궁금해지는데 오늘은 추억이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참 고마워집니다. 이번에도 남산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광장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여름의 풍경을 보는 것으로도 참 좋았답니다. '무겁이'를 안고 다니느라 지난날에는 부리지 못했던 여유를 이번에는 즐겨봅니다. 눈을 감고 정겨운 매미의 울음소리에 얹어진 초저녁에 부는 바람에 초록잎이 내는 싱그러운 소리를 들었지요.
하지만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전망대는 또 후회했지요. 아마도 저에게 남산서울타워 전망대를 갈 일은 이제 한 번쯤 남은 것 같아요. 내 아이가 어렸을 때, 살다가 추억이 잘 있나 확인하러 한 번(이것은 오늘), 손자와 손녀의 손을 잡고 한 번. 하지만 남산케이블카는 열여섯 번이라도 더 탈 수 있지요. 아무튼 아직 멀었지만 마지막으로 전망대를 올라갈 날을 위해 높은 곳에 올라가도 덜덜 떨지 않을 담력과 길고 긴 대기줄에도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근지구력을 지금부터 신경 써서 길러놓아야겠어요.
서울 여행 1일 차, 오늘은 무척 운이 좋았고 또 자랑스러운 하루를 보냈답니다. 운이 좋았던 이유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1시간을 기다릴 각오로 갔는데 30분 만에 탑승할 수 있어 다시 '러키비키'를 외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자랑스러운 하루가 된 것은 얼마나 외국인들이 많은지, 특히 단체 여행을 온 일본 학생들을 포함한 외국인 가족과 함께 케이블카를 탔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감탄을 하는 모습을 보았지요. 사실 휴가가 길어서 일본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스고이~"를 반나절 동안 들으면서 여행 속 여행을 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보니 제주로 여행을 온 지인이 중국에 온 것 같다고 한 말이 생각나네요. 이것은 기분 좋은 일타이피일까요?
물론 눈에 담기는 풍경도 빼놓을 수 없죠. 고속도로와 KTX를 타고 달리며 병풍처럼 펼쳐진 앞산, 뒷산을 볼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제주의 도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거든요. 게다가 이 도서의 매연! 때로는 소음과 매연, 마주 오는 사람과 툭 부딪히는 복잡한 일상에서 고향의 맛을 느끼기도 하네요. 남산타워 광장에서 보는 고층 빌딩숲과 나무 숲의 조화는 잘 버무려진 비빔밥 한 숟가락 같았고요. 일정을 마친 늦은 밤에는 조명이 켜진 남산타워를 보며 21층에 있는 풋스파에서 족욕을 하며 피로를 풀어봅니다. 온전히 하루를 여행하는 내일은 아침부터 분주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