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격’.
설마, 그럴 리가 없지. 암, 아닐 거야.
다시 천천히 이름을 쓰고, 생년월일을 몇 번이나 확인한 뒤 ‘조회’를 눌렀다.
‘불합격’.
우리 춘기가 떨어지다니.
왜 우리 춘기가 합격자 명단에 없을까.
친애하는 브런치 작가님들, 먼저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지난 1년 동안 ‘중3 수험생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고, 이제야 마음속으로 그리던 글을 쓰기 위해 1평 식탁 앞에 앉았습니다. 이 글은 지난 11월부터 시작하려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뜸 들이지 않고 이야기를 바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춘기’라고 불리는 우리 집 아이는 과학고 입시에서 불합격했습니다. 준비 기간은 만 1년. 결과가 정해지고 나니 아이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기간이고, 엄마 입장에서는 공통수학부터 미적분, 물리와 화학까지 묵묵히 달려준 아이에게 고마움이 더 큰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떨어진 이유를 분석하며 앞으로 채워야 할 부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고등학교 생활을 위한 경험을 얻었으며, 저는 3년 뒤에 다시 올 고3의 시간을 버텨낼 마음의 기준 하나를 얻게 되었습니다.
결과를 기다리며 가장 두려웠던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아이가 떨어졌을 때, 과연 내 마음이 괜찮을까. 그리고 엄마로서 옆에서 올바른 말을 해주고 있는 걸까. 후자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전자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이 되고 나니,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과학 학원 선생님은 급하게 전화를 걸어와 아이를 당장 조퇴시켜 위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혹시라도 친구들이 놀릴지 모른다며 제 마음을 먼저 요동치게 했지만, 자글거리는 마음 한가운데서 ‘불합격’이라는 세 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아주 오래 묻어두었던 어떤 시간 덕분입니다. 사람은 겪어보지 않은 아픔 앞에서는 쉽게 무너질 것 같다고 상상하지만, 이미 한 번 크게 잃어본 사람은 다릅니다. 오래전의 일, 그 친구가 제 안에 남아 있었고, 시간은 기억 위에 인내와 배려를 덧입혀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저는 이 결과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 날-아이가 특목고 입시에서 탈락하는 순간-을 위해 친구가 제 마음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친구의 시간이 멈춘 날은 1997년 11월 23일 오후 다섯 시 무렵입니다. 외고 입시를 치른 뒤 불합격이라는 통지를 받고 가족들을 실망시켰다는 괴로움과 절망에 빠진 친구는 열여섯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아쉬운 나이입니다. 더 먹지 않는 나이처럼 그날 이후로 제 마음속에도 고장 난 시계 하나가 서랍 속에 들어갔습니다. 평소에는 꺼내지 않았지만,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시계는 조용히 째깍거리곤 했습니다.
첫 출근을 하던 날, 저는 그 아이가 가지지 못한 시간만큼 더 성실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결혼식 전날 밤에는 그 아이가 드레스를 입은 제게 뭐라고 말해줄지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첫 아이를 품었을 때는 ‘혹시 내 아이로 다시 태어나면 그땐 따뜻한 말만 해줘야지’라고 생각하다가도, 곧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렇게 삶을 놓아버리는 것은 남은 사람의 가슴에 너무 깊은 못을 박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친구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단 한 번도 소리 내어 부른 적이 없었네요.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놓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친구를 붙잡고 있으면 그 친구가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한다는 말도 들었지만, 추억 아니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지운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28년이 더 흘렀습니다. 춘기가 멈춘 시계 속 친구의 나이와 같은 열여섯 살이 되었고, 공교롭게도 특목고 불합격 소식을 받았습니다. 우리 집 춘기는 하루 정도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음 날부터는 다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엄마, 오늘 세준이가 내가 제일 빨리 회복해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 멋있대."
같이 공부하던 친구도 따뜻한 말을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고개를 푹 숙인 채 다니느라 얼굴을 마주 보기가 힘든 친구들이 여럿 있다는 말을 들으며, 아이들이 지켜야 할 것은 결과를 받아들이는 마음보다 그 시간을 통과해 온 과정에 대한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춘기에게 진심으로 위로와 응원을 건넸습니다. 억지로 괜찮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다음 기회를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까지 잘해봤고, 이 시간 또한 너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춘기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제는 분명히 알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오래전 멈춰버린 그 시간 덕분이라는 것을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시간이 제 안에 흘러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쩌면 친구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앞에서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순간을 만날지도 모를 저를 위해, 춘기를 지키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주 늦었지만 마음속으로 말을 건넵니다. 그때 네가 듣고 싶었을 말들을 지금 내 아이에게 하고 있다고. 너에게도 그 말들이 닿아 오래 붙들고 있던 고통과 죄책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고 말입니다.
안녕, 나의 오래된 친구.
(2025.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