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줄이기, 달리기와 條約
오늘은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4주 만의 진료였다. 어떻게 지냈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내가 느꼈던 증세를 읊었다.
"잘 지냈는데, 졸음이 너무 쏟아졌어요. 오후 7시부터 아침 5시 반까지 자도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오전 시간이나 낮 시간에도 졸려서 꾸벅꾸벅 졸고 있어요. 제가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몸이 피곤해서 잠이 쏟아지는 건지 약 때문에 졸린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면 그 하늘색 약을 반으로 줄여봅시다."
"사일레노요?"
"네, 사일레노. 그 약을 줄여보고 4주 뒤에 봅시다."
사일레노는 내가 복용하는 약인데, 불면증 단기 치료에 사용된다(복약 설명문). 뭐가 됐든 약이 조금 줄어서 좋았다. 이 약들을 평생 먹어야 하는 건 아닌지 가끔가다가 걱정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병원 근처 김밥 맛집에서 김밥을 푸짐히 사서 집에 돌아가 저녁을 때웠다. 달리기 하는 날이므로 소화시킨 후 밖으로 나갔다.
뛰면서 음악을 듣는데, 분명 음악은 흘러가고 있는데 들리지 않았다. 재생 중인지 멈춘 건지 무슨 가사를 부르는 부분인지 알아채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힘들었다.
혼이 나간 채 뛰고 있는데, 짙은 나무냄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처음 맡는듯한 싱그럽고 생생하고 맑고 향긋한 냄새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초록 짙푸른 가로수들이 우거져있었다.
요즘 같은 계절을 녹음(綠陰)의 계절이라고 부르고 녹음이 짙다, 고 표현한다. 녹음은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나 수풀, 또는 그 나무의 그늘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또는 그 나무의 냄새'라는 말을 추가해 보면 어떨까?라는 이상한 생각이 그 힘들게 달리는 찰나에 잠깐 들었다. 그 힘든 와중에도 온몸으로 느껴질 만큼 나무의 향기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달린이(달리기 어린이)로서 처음으로 5km(30분!) 쉬지 않고 달리는 데 성공했다. 뿌듯하고도, 숨이 넘어갈 듯 힘들었다.
귀가하여 지난 2월 기록한 글을 다시 읽어보자니 웃음이 터져 나온다.
https://brunch.co.kr/@raindawson/201
연말까지 최종목표 10km를 30분에 주파한다. 아하하하!
변명을 해보자면, 그때까진 자의로 진지하게 장거리 달리기를 제대로 한 적이 없어서 기록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위 기록을 달성하려면 1킬로당 3분 내 뛰어야 한다는 거고 지금의 2배 속도로 질주해야 한다는 것(...)
저 목표는 정정하도록 하겠다. 나는 오늘을 기점으로 5킬로씩, 최소 30분 이상, 격일로 1년 이상 달리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나이키런 앱을 깔고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 올해 3월 16일, 달리기를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을 넘었다. 오히려 운동을 할수록 기록이나 거리에 대한 욕심은 사라졌다. 나만의 속도대로 꾸준히 달려야겠다는 생각이다.
다이어트 때문에 고민인 친구 S와 한탄하다가 윈윈 할 수 있는 조약을 체결했다.
S는 새로 일을 시작한 지 몇 개월 됐는데,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주말이면 미친 듯이 배달음식을 시켜서 먹는다고 했다. 평일에 열심히 운동하고 식단 조절을 하였지만, 그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 동안 평일 간의 노력을 다 상쇄시킬 만큼 말이다. 혼자 조절하려니 어렵다고 했다.
나는 나대로 요새 디저트에 중독된 듯 단 것을 자꾸 찾아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무실에서 간식 찬스가 생겼을 때, 때를 놓치지 않고 "낮이니까 괜찮아!"를 외치며 먹어대는 나였다. 그 먹는 것은 물론 과자나 빵, 케이크, 달달한 음료수 등...
우리는 이 고민을 공유하고 어떻게 해결할까 머리를 맞댔는데, 아주 원초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각자의 목표를 정하고 이를 어길 시 벌금을 내자!
벌금이 얼마인지는 아직 미정이다. 다만 목표는 꽤나 구체적으로 정했다.
이 목표가 지켜지려면 우리는 상당히 양심적이어야만 한다. 결국 본인을 위해서 정한 것이니 충실히 이행해 보기로 하겠다.
오늘은 약도 줄이고, 새로운 목표도 달성하고 또 친구와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 소소하게 뜻깊은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