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하다, 손에 닿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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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 Dawson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그에게 나의 이별 이야기를 했더니, 한동안 화를 내며 효진이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이별 통보를 하는 사람이 다 있냐,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가능한 사람 맞냐, 개념도 생각도 없다, 등등.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소주잔을 손에 쥔 채 듣고만 있었다. 친구는 한참을 그러다가 내 잔에 소주를 따르며 한층 풀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저번에 말한 게 맞는 거 같다. 걘 갈피를 못 잡고 있던 거야. 그걸 본인도 아니까, 이런저런 결과 다 시뮬레이션 돌려 보고 행동한 거고. 얼굴 보면 마음 약해지니까 아예 싹 끊으려고, 그런 매너 없는 방법을 택한 걸 거다. 얼굴 보거나 목소리 들으면, 또 저번처럼 마음이 약해질지도 몰라서.


한 가진 진짜 확실하다. 걘 더 이상 너랑 엮이기 싫은 거야. 이젠 친한 선배로 남기는 것조차 싫은 거지.


야, 술이나 먹어. 너무 순수해도 힘든 거야. 다 잊어버려라.”


시험 잘 보라고, 미소 띤 얼굴로 뒤돌아서던 그 모습이 손에 닿을 것처럼, 아직도 선명한데. 잊어버려야 한다는데, 지금으로선 도무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엉망으로 취해 집에 돌아온 그날부터, 나도 모르게 혹시 모를 연락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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