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같은 상황보다 마음의 무게가 약간 더 무거울 때.
현재의 현상이 불행과 다행 사이 어디쯤 있다면, 내가 타당하게 느껴야 하는 감정은 무엇일까?
사실 지금 내가 매일 맞이하는 오늘은 불행스럽지도, 다행스럽지도 않다. 힘들다면 힘들고, 그러나 절대적으로 절망스럽지도 않은 순간순간들에 때로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어딘가로 두둥실 먼지가 되어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주변에서도 그렇지, 그럴 땐 그럴 수밖에 없지, 라는 말들을 하니, 그저 만만치만은 아닌 상황인 것이 틀림없는 것도 같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 붙일 이름이 없었다. 정말 애매모호하고도 그야말로 먼지가 되어 부유하는 기분. 친구를 만나 한바탕 수다를 떨고, 각자 무언가를 하던 시간에 계속적으로 의식의 흐름을 종이에 옮겨보았다. 어깨가 이완되고, 마치 거대한 공백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자잘하게 채워지는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집에 오면서 들었던 기분은 그야말로 먼지가 되어 뿌듯한 비행을 한 느낌. 그렇게 뽀얗게 서재 책상에 앉아 안정감 넘치는 먼지가 되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새삼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 같은 사진을 하나 캡처해 놓은 것이 있었다. 실제 어린아이의 글씨로 쓰인 동시 한편이었다. 이곳에 잠시 옮겨 적자면 그 동시 일기의 전문은 이러하다.
동시 일기: 용기
(작자미상)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야 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못해요
이 동시를 사진함에 보관해놓고, 폰을 바꾸어도 계속 가지고 있던지가 벌써 십여 년은 된듯하다. 사진을 정리하면서도 이 사진만큼은 따로 앨범에 저장해놓았었다.
거부감. 동시에 드는 찬탄.
나도 잘 모르겠으며 밝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정곡으로 찔려서 거부감이 들고, 닿고 싶지 않은 부분을 내손이 아닌 시각적인 감각으로 타인에 의해 건드려짐으로써 느끼게 되어 찬탄하게 되는 그런 이율배반적인 감정.
나는 능력이 없다는 일방적인 백기가 아니라, 한 치 앞의 현상도 예측할 수 없으며 나에게 내일 주어질 오늘이라는 미션을 나로서는 컨트롤할 수 없다는 어떤 진실에 대한 인정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말이다. overcome과 give up의 간극을 파도를 타듯 넘나들고, 지금에서 유체 이탈하듯 빠져나와 나의 감정과 감성과 이성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지게 될 것이다.
자유는 현상 안과 밖에서 선택하는 것인 것이었다. 나 자신에게 혹독해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 누구도 나에게 흠집을 낼 권리를 주지 않되 나 자신에게 조차 그 권리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는 길. 결국, 지금 내게 필요한 용기는 '나는 못해요'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용기인 것이다.
내 뜻대로 흘러가는 일은 그 어떤 순간에도 없다는 것. 손에 움켜쥐려 하면 할수록 모래알처럼 점점 빠져나가버릴 것이라는 것.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때, 그저 내 발치에 아스라이 보이는 길을 한 발짝 한 발짝씩 더듬으며 길일지 모르는 그 길을 만들어 가는 것.
내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오직 내가 혼자라는 것이다. 결정과 선택은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그 책임감을 수용하는 하루를 보냈던가? 반문해 본다. 아니었던 순간과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하루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를 보낸 것 같아 오늘은 왠지 더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