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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서 Nov 09. 2021

공간이 주는 위안.

서재.

오랜만에 서재에 놓인 작은 소파에 앉아본다. 베란다 창밖으로 잎이 다 져가는 휑한 나뭇가지가 겨울이 오고 있음을 전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을 열어야 시원했는데, 바닥에 지핀 보일러 온기가 기껍고, 덧신에 폭신히 싸인 발이 심장께까지 따스함을 전하는 것 같다.


요즘은 날씨만큼이나 서늘한 마음이 지속되는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상황 속에 갇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뿐이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의 가지에 갇혀서 옴짝달싹 못하는 기분은 약간 참담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가야 해결될 것들, 시간은 얼마나 느리게도 가던지.


생각은 내 마음대로 멈출 수 없지만,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이틀간에 걸쳐 서재의 가구 배치를 바꾸고, 쓰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쓸모 있는 물건들을 남기면서 생각의 정리는 몸으로 하는 거라는 것을 느꼈다.


가열차게 치우고 나니, 내가 줄곧 머무르는 이 공간에 볕이 들고, 바람이 통하고, 다시금 작은 희망이 도사리는. 그런 안정감이 든다. 상황이 좋아질 것인지, 언제쯤 끝이 보일 것인지 손톱을 물던 게 아득하게 느껴질 만큼, 이 순간 공간이 주는 따스함과, 느릿한 피아노 연주음악과 노란 조명이 어우러져 마음을 위로한다.


책장 두 개를 베란다로 빼서 빼곡히 꽂고 나니 서재 안 책장에는 바로 써야 할 책만 넣어놓을 수 있어 마음이 흡족하다. 늘어나는 물건들에 언젠간 다시 손을 대야 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이것으로 충분해. 충분하고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충분해.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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