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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서 Jan 25. 2022

행복의 궤적

생의 행복에 대하여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임종. 그런데 불과 삼주가 채 되지 않아 할머니의 병환이 크게 악화되어 시골집에서 정하신 장례식장으로 소환되었다. 기가 막힐 일이다.


나와 아버지의 사이는 참 좋았다. 내가 한창 sns에 빠져있는 시간이 있으면 아버지는 못내 서운해하시며 '그거 좀 조금만 하면 안 돼? 이야기할 시간이 없잖니.' 하시곤 했다. 우리는 짜장면 데이트도, 커피숍 데이트도 자주 가는 단짝 같은 부녀였다.


내 걷는 걸음걸음마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바람 한줄기, 햇볕 한 조각, 무심코 발에 채이는 풀 한 포기처럼 생생하나 아련하게 마음을 스친다.


끊는다 다짐하고 한동안 사지 않았던 담배를 한 갑 사서 한 개비 불을 붙이고 연기를 쭉 내쉬어본다. 텁텁한 것이 영 맛이 없다. 아버지는 애연가를 넘어서 살기 위해 담배를 태우시던 분이었다. 매일매일 연명되는 하루가 고단해서 담배를 피우신다고 했다. 언젠가 내가 담배를 피우곤 한다는 것을 아셨을 때 몸에 해로우니 금방 끊거라. 하시던 다정한 목소리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자식과 가정을 위해 참 따뜻한 울타리를 만드시던 분이었다. 엄마가 귀찮아 집안일을 미루시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는 그 시절 아마도 내게 우울증이 있었던 듯 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어둑어둑한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여보, 라면 끓여줄까? 아님 나가서 맛있는 거 사 먹을까?" 하며 어린 나를 챙기고는 하셨다. 대장부 같은 엄마가 내가 그림 숙제를 받아오면, 숙제는 혼자서 하라고 내주는 거라고 하실 때, 아빠는 나랑 바닥에 엎드려 누워 스케치북에 뽕뽕 연기가 나는 열기구나, 예쁜 구름과 무지개, 그 하늘을 나는 비행기 같은 조그마한 그림들을 그려 함께 장식해 주시곤 했다.


 2 시절이었을 것이라 기억되는 어느 , 학원에서 모의 토익 시험을 보았다. 나는 열심히 풀다가 도저히 뭐가  말인지 모르겠다 하고 지쳐서 쭈욱 'C' 답안 마킹을 하고 히죽 웃었다. 이러면 사분지 일타작은 하겠지. 정말 300 가까이 점수가 나왔는데, 아버지는  성적표를 보고, 우리 딸이 어려운 토익 시험을 300점이나 맞다니, 하며 소주를   드시고 눈시울을 붉히시며 성적표안주라도 되는  들여다 보고,  들여다보셨다. 나는  옆에 앉아 철없이 진실을 밝히냐 마냐의 기로에 서서 졸아있던 그런 기억이 난다.


스무 해, 서른 해, 내 생이 지나는 동안 아버지는 늘 한결같았다. 마치 자동 입력된 로봇처럼 성실하게 일해 고생바가지를 하시며 집을 일으키셨고, 이제 좀 쉬실 나이가 되셨던 것이 사실 요 근래였던 것이다.


지난여름 나는 아버지와 마지막 여행을 했다. 사실 마지막일지 몰랐던 '첫 번째 부녀 둘만의 여행'이었다. 할머니 생신을 맞아, 유달리 이번에는 꼭 가시고 싶다며 할머니가 얼마 안 남으셨을지 모른다고 애달파하시는 아버지를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진고개를 내가 운전해서 굽이굽이 돌며, 그 옛날 강원도에 하얗고 깨끗한 눈이 아주 많이 내리던 시절을 기억했다.


아빠가 스노 체인을 감는 모습을 쪼그리고 앉아 손을 불며 열심히 쳐다보는 나. 그 내가 운전석에 앉아 같은 길을 가는 성인이 된 것이 마치 별똥별이 떨어지듯 찰나의 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우리는 소금강 시골집에서 할머니를 뵈었고, 아빠가 졸업하신 초등학교와 대학교를 지나치며, 나는 꺄악 거리고 아버지는 자부심 넘치게 그 고되었던 학창 시절을 이야기하셨다. 듣고 또 들어왔던 그 이야기가 머물던 공간을 지나가던 찰나에 참으로 많은 생각이 스쳤던 것 같다.


내 태어난 세상에서 아버지와 이별한 지 삼주 가량 된 오늘,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던 할머니의 빈소 밖 주차장에 앉아 어떤, 상념에 잠긴다.


아버지는 행복하셨을까?


아빠... 하고 부르며 눈을 살짝 감는다. 별 하나 뜬 모양새의 기억 조각은 또 다른 추억으로 꼬리를 물어 별의 궤적을 만든다. 아버지라는 한 존재와 함께했던 별처럼 많은 시간이 은하수처럼 내 가슴에 흘러내려간다.


기억 속으로 걸어가시는 아버지가 뒤돌아 내게 물으시는 것 같다.


"딸아, 행복하니?"


대기의 오염물질이 걷히고, 비나 눈이 한차례 쏟아붓고, 강풍도 한번 내지르고 나면 말갛게 걷힌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될까?


'나는 행복해 아빠.'


내가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들을 환기시키고, 슬플 때 울고 기쁠 때면 티 없이 웃어버리면 나는 수없이 많은 행복의 조각들을 찾아낼 거야. 그리고 밤하늘이 새카매서, 새카마니까 그 별들이 반짝인다는 걸 나는 이제 알아. 아빠 딸이 그걸 알 정도의 나이를 먹었어. 그러니 걱정 말고, 걱정 말고 편히 가, 아빠.


"나는 행복했어. 아빠의 딸이어서.

나는 행복해. 내가 나라서.

그리고 내내 행복할 거야. 마지막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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