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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비 May 14. 2020

어린 환자 (3)

  나는 이렇게 해서 아주 중요한 두 번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것은 그가 병원에 있어온 시간이 8년 될까말까 하다는 것이었다그것은 나에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티비에서 91,67,84동같이 사람들이 병으로 분류된 커다란 병실 말고도 수백 개의 다른 병실들이 있는데 어떤 것들은 너무도 암울해서 지나가며 보기 힘들 정도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던 것이다의사가 그런 병을 발견하면 이름 대신 알파벳과 번호를 매겨 준다이를테면, C22.0, Stage B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나는 어린 환자가 있던 병실이 CIDS 병동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그 병동은 딱 한 번티비 채널을 넘기다 본 적이 있다그 당시 의사는 병의 원인과 증상을 훌륭히 증명해 보였다그러나 입원실로 화면이 넘어가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불치병이란 모두 이런 식이다


  CDIS는 선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으로 태어날 때부터 면역과 관련된 유전자에 결함이 생기는 유전성 질병 중 하나다발생 빈도는 10,000명 중 한명꼴이며그 중 B세포계 결함이 55%, T세포계 결함이 25%, 식세포계 결함이 18%, 보체계의 결함이 2%를 차지하며 C3, C4 농도측정 NBT test 등을 시행해 검사를 한다


  내가 CDIS에 관해 이렇게 일러주는 것은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이다이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누가 아프다고 말을 할 때면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 보는 적이 없다. “오늘 기분은 어떠니밥은 뭐 먹었어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은?”라는 말들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약은 얼마나 자주 먹어야 되고치료비는 몇이고언제 낫는데?”하고 묻는다그제서야 어디가 아픈 사람인지 알게 된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만약 이들에게 “어제는 모든 게 조용해 보였는데오늘은 너무 시끄러워요.”라고 말하면 그 아픔이 어떤 아픔인지 상상하지 못한다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어제 옆에 있던 다른 분이 돌아가셨는데오늘은 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어요.”라고 말해야만 한다그러면 그들은 소란스러웠겠구나!”하고 소리친다


  그래서 어린 환자가 매혹적이었고웃었고친구 한 명을 사귀고 싶어했다는 것이 그가 이 세상에 있었던 증거야어떤 사람이 친구를 사귀고 싶어한다면 그건 그가 이 세상에 있다는 증거야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여러분을 이상한 사람 취급할 것이다그러나 그가 가진 병은 완치율이 0%에 가깝습니다라고 말하면 수긍을 하고 더 이상 질문을 해대며 귀찮게 굴지도 않을 것이다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다 그렇다그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무경험에 대해 항상 너그럽게 대해야만 한다.


  하지만 아픔을 하나씩 품고 있는 우리는 숫자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나는 이야기를 동화 같은 식으로 시작하고 싶었다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옛날에 자신의 나이보다 적을까말까 한 시간동안 병원에 살고 있는 어린 환자가 있었는데 그는 친구를 가지고 싶었답니다. ……”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겐 그게 훨씬 더 진실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이 이 기록을 건성으로 읽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이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내 친구가 그의 친구와 함께 떠나가 버린 지도 벌써 여섯 해가 된다내가 여기서 그를 묘사해 보려 애쓰는 것은 그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한 사람의 친구를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니까누구나 다 친구를 가져 보는 것은 아니다그를 잊는다면 나는 숫자 밖에는 흥미가 없는 그런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불행히도 나는 수술비를 채우기 위해 다시 돈을 벌고 약의 개수를 센다아마 늙어 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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