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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비 May 16. 2020

효진이와 효찬이

  오랜만에 효찬과 만나서 술을 마셨다. 둘 다 술과 음악과 대화를 좋아했기에 술집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술과 음악을 고를 수 있는 서로의 자취방에서 술을 마시길 좋아했다. 어제도 나는 종류별로 산 술이 들어있는 봉지를 흔들며 효찬의 자취방으로 갔다.

 

  효찬을 만났을 때 우리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여고를 다니던 2학년, 같은 반에서 효진이를 만났다. 어느 날 효진이는 자신을 이제 효찬이라고 불러달라고 했고, 그날도 우리는 술과 함께 많은 대화를 했었다. 효진과 효찬은 이름의 두 획 말고는 다르게 느껴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그는 나에게 대화가 잘 통하는 오래된 좋은 술친구였다. 

 

  효찬의 집에 도착하자 헐렁한 회색 츄리닝 바지에 파란 후드티를 입은 효찬이 나보다 술을 먼저 반기며 나를 집으로 들였다. 나는 곧장 쇼파로 뒤어들어 편한 자리에 편한 자세를 잡았고 효찬은 찡그린 얼굴로 내 발을 툭툭 치며 ' 씻고 누워!'라고 잔소리를 했다.

 

  어제의 대화는 어쩌다 죽음으로 흘러갔다. 한 시사교양 프로에서 교수가 자신은 유언장을 매년 쓴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각자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바다 속 바닥에 땅을 파서 무덤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만약 영혼이 무덤 주위를 맴돈다면 육지에서는 살아봤으니 바다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취지였다. 하늘에서 살아보고 싶은 게 제일이긴 했지만 하늘에 무덤을 지을 수는 없는 까닭에 금방 포기했다. 효찬은 그럼 산꼭대기에 무덤을 파면 되지 않냐고 했지만, 나는 가족들이 괜히 산소 찾아온다고 고생할 바에는 아예 찾아올 수 없는 바다 밑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 그리고 내 장례식에는 각자 나랑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씩 가져오라고 할 거야. 그리고 난 영혼이 되어서 장례식장에 가면 내 얘기들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장례관을 들은 효찬은 조용히 소주를 까며 말했다. 


  - 나는 죽고 영혼으로 남을 수 있다면 내 장례식에는 절대 안 갈 거야.

  - 왜?

  - 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떠들어대는 게 제일 싫거든. 죽어서만큼은 나로 존재하고 싶어. 내 민증이랑 몸뚱이는 여전히 장효진이잖아.


  효찬이는 성전환 수술을 못했다. 못했는지 안했는지 사실 모르겠다그동안의 대화로 추측하자면 수술을 위해서는 부담스러운 돈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효찬의 존재를 는 사람 많지 않다그런 점에서 우리가 친한 사이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의 사정을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하면 갑자기 멀게만 느껴진다


  - 나에 대해 사람들은 한마디씩 하겠지. 남자친구는 없었냐느니, 참하고 예쁜 아이였다느니, 배우자도 없이 죽어서 안타깝다드니, 엄마를 닮은 착한 딸이었다느니. 좋은 뜻으로 한 말들이겠지만, 사실 진짜 나한테 한 말은 아니니까 의미가 없지. ... 작년에 큰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그 때 생각한 거야. 죽어서 내 장례식은 절대 안 갈거라고. 사람들이 큰아버지처럼 강인한 남자는 못 봤다고, 자식도 못 낳고 가서 안타깝다고 하는데 만약에 큰아버지가 나처럼 클로젯이었다면, 손에 잡힌 단단한 굳은살보다 부드러운 머릿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어. 


이번엔 막걸리를 따르며 효찬이는 이어 말한다

 

  - 하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렇게 고인은 살아있는 사람한테 규정 당해 버리는 게 아닐까. 편안한 죽음은 없어. 죽으면 내가 말을 못하는 게 제일 억울할 것 같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효찬이도 알아차리고 그저 나에게 짠을 권한다 


-


  - 크흐야 효찬아 그럼 내가 빙의를 배워볼까. 너가 내 몸으로 들어와서 장례식 깽판 한번 쳐보자


효찬이는 막걸리를 뿜듯이 웃었다. 


  - 근데 그러다가 내가 못 빠져나가면 어떡해. 니 몸으로 살기 싫은데. 이봐 배는 물렁해가지고


효찬이는 내 배를 두툼하게 꼬집었고나는 간지러워 웃었다. 

 

  - 그러면 이건 어때. 장례식을 한번 더 하자. 장효진 장례식 말고 장효찬 장례식. 지금처럼 그냥 자취방에서 편하게. 진짜 너를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얼마나 너가 효찬스러웠는지 떠들어내는 거야. 니 욕도 좀 하고.

  - 죽을래


  그 뒤로 우리는 술이 떨어질 때까지 대화를 이어갔고, 몽롱한 기운에 나란히 누워 잠에 들었다. 다음날 집에 가기 위해 깼을 때 효찬이는 여전히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말이 없었다. 나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효진인지, 효찬인지 생각을 하다가 여전히 둘의 차이는 이름의 두 획뿐이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효친이와 효찬이가 편안한 잠을 자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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