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속도

by 박성현






자정의 속도


박성현




내가 내 옆에 누워

조용히 심장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말라버린 향수는 얼룩의 영역만 지킵니다

나는 일회용 수저처럼 식욕이 없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무릎은 동요하지 않습니다

주머니와 계단이 헐렁한 이유입니다

외투가 걸려 있으니 벽에는 못이 박혀 있겠지요

못은 이 집의 유일한 발자국들입니다


손바닥에서 빈둥거리는 가죽을 벗겨내고,

지문을 삭제합니다 지문이 기록했던 사건은

따로 저장해 이야기 목록으로 만듭니다


─ 이를테면, 발목이 허물어지는 속도

─ 이를테면, 신문이 감췄던 어제의 문장

─ 이를테면, 지구에서 완벽히 사라진 죽음들


그리고 나는

무수한 ‘이를테면’이 몸의 배란排卵이라는

당연한 결론을 삭제합니다


엄숙하게 화초를 지키는 창문

누군가의 쓸모를 기다리는 식탁

근육을 감추는 어둠은 철저하게

개별적인 자정입니다


나는 내 옆에 누워

바닥으로 진화하는 척추를 만집니다

심장은 멈춰야 할 때를 알고 있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사건은 없는 것이죠

─ 이를테면, 또한 이를테면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문예중앙, 2020. 수록









[以後, 시작노트] 내가, 내 옆에 눕는다. 그의 얼굴을 지켜본다. 잠에 휩싸인 그의 얼굴은 바닷물이 모조리 빠져나간 갯벌처럼 밑바닥까지 드러나 있다. 물이 들고 나는 굴곡도 선명하다. 나는 그 얼굴을 자세히 보기 위해 더 가까이 간다. 그는 규칙적으로 호흡한다. 허파를 부풀리면서 숨을 가두고 가볍게 압축하면서 빼낸다. 그때 그는 눈을 찡그린다. 안면 근육을 움직여 잠시 표정을 만들고는 내가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전에 풀어버린다. 내가 내 옆에 누운 후, 나는 붉은 깃털로 장식된 마스크를 들고서 그의 얼굴과 대조하기 시작한다. 활이 멀리 있는 죽음이라면(파스칼 키냐르), 칼은 거리가 제로의 죽음이다. 오직 칼만이 죽음의 곁을 지키는 뜨거운 도구다. 내가, 내 옆에 누웠을 때 이미 활은 무용해졌고, 칼로써만 그에게 죽음을 선사할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이 확실해질수록 나는 그의 얼굴에 가까이 간다. 잠에 빠진 얼굴은 분화구처럼 어둡다. 식탁에 앉아 뉴스를 듣고, 메모를 한다. 내일 나는 일회용 수저만큼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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