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개의 시선만이

by 박성현






오직 한 개의 시선만이


박성현




빗방울 하나가 닿은 것인데 순간 수면이 파르르 떨렸다

각각의 파장은 먼 곳까지 가서 소진되겠지만 굽이를 내거나 언덕을 깎는 것은 처음부터

비의 입장이다 나는,

대나무 숲으로 흐르다가 솟구치며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바람에 기대었는데 몸이 수천 갈래로 갈라지는 기척을 느꼈다

다른 눈은 모두 감겨 있었고

오직 한 개의 시선만이 내게 길을 내었다







계간 서정과현실 2022년 여름호 수록








[以後, 시작노트] 첫 사랑이 어떻게 다가 왔는지 그리고 그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었는지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그것은 순간 시커먼 해저로 침투하는 철근처럼 단단한 빛이었다. 사춘기로 접어든 나는, 죽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정확히는 '말테'의 시선과 같은, 그런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불명확한 죽음이었지만, 그것은 마음을 움켜쥐고는 나이테처럼 감쌌으며 곧바로 뿌리내렸다. 되돌려보면 당시 내게 죽음이란 단순히 '죽는 일'에 불과했다. 어떤 폭력이나 광기에 의해 산산조각 나는 유기체의 종말 혹은 그런 고통 뒤에 찾아드는 달콤함 것 같은 그런 고통 말이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할수록, 죽음 쪽으로 걸어갈수록 그것은 구체적인 모양의, 형용 가능한 색채의 표피를 벗었다. 죽음은 내 삶과 뒤섞였다. 나는 막다른 골목에 갇힌 듯했다. 심장은 절박함이 모조리 빠져나간 텅 빈 동공처럼 사물을 분별하지 못했다. 나는 언어장애에 시달렸다. 말은 내 혀에서 머뭇거리며 세상으로 나가기를 거부했다. 밤늦도록 교실에 앉아 있었지만, 누구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죽음을 이해하고 죽음에 나를 내맡기는 방식이었다. 어느 날, 나는 예배당 한 구석에서 죽음 뒤에 분명히 찾아와야 하는 '신'과 '눈물'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고립된 나의 침묵을 누군가 바라보고 있었다. 몸이 수천 갈래로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돌아봤고 다른 눈이 아닌 바로 그 눈과 마주쳤다. 오직 한 개의 시선만이 내게 길을 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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