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회전

by 박성현






사과의 회전


박성현




사과를 씹는다 개가 앉아 당신을 쳐다본다 사과를 씹으면서 개의 목덜미를 만지는 얼굴은 어제의 당신과 똑같다 어제의 나도 사과를 씹으며, 당신을 쳐다보는 개의 목덜미에 손을 얹는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낮과 밤의 밝은 주황이 점멸한다 악기들은 꿈을 꾸며 격렬하게 소리를 낸다 스튜디오는 북촌 방향으로 휘어지고 시간은 같은 자리를 반복한다 사과를 움켜쥔 손가락은 사과가 회전하는 방식 짓무른 날씨는 오후의 햇볕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이름을 모르면서도 서로를 안다고 믿는다 당신은 벤치에 앉아 간단한 사과를 씹는다 개가 앉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어제부터 당신의 웃음은 사과의 이빨자국처럼 뚜렷하게 입에 걸려 있다 여름이 지날 때까지 그렇게 걸려 있다 신체의 일부를 강탈당한 채 사과는 어제의 개를 쳐다본다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문예중앙, 2018. 수록.







[以後, 시작노트] 사물이 나를 본다고 가정하는 건 어때? 사물이, 사물 자체의 언어로 나를 보는 거지. 나의 시선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나의 감정과 언어와 목소리가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나'를 멀리 두고, 철저히 배제한 채. 나는 단지, 사물에 찍힌 풍경을 받아 적는 사람인 거야. 자주 사물을 바꾸고, 그 시점(視點)에서 '나'는 점점 흐려지다가 소실되지 않겠어? 사물의 언어-속-에서 '나'는 분열되지 않겠어? 이와 동일하게, 시차(視差)를 이용하는 것도 색다르지. 위치가 달라지면 사물은 전혀 다른, 때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것'으로 변하기도 해. 공원 벤치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개가 앉아서 나를 쳐다보는 거야. 그 개의 목덜미를 만지면서 사과를 씹는 사람이 벤치에 앉아 있어. 개가 앉아 사과를 씹는 당신을 쳐다보는데, 나도 개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있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낮과 밤의 밝은 주황이 점멸하는데, 회전목마를 타는 사람들의 꿈속으로 침전하는 악기들. 소리들. 음악들. 이빨자국 모양으로 신체의일부를 강탈당한 사과는 어제의 개를 쳐다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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