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박성현
자크
나는 우리가 어디를 가는지 아는 게
겁이 나는구나 *
셔터 속에 들어 온 것은 황무지뿐이다
자크는 등을 곧게 펴고 앉아 있다가 손바닥을 흔들었다 어깨 밑이 바스락거렸다
자물쇠가 채워진 트렁크 위에 지도를 펼쳤다 달과 언덕은 여전히 이차원의 가장자리
낮도 밤도 아닌 종소리가, 낮도 밤도 아닌 두 사람 귓속을 울렸다
첨탑에 걸린 것은 구름이고, 언덕 너머 묘지로 향하다 잠시 멈춰 있다
갈고리 모양으로 휘어진 자크의 옆얼굴이 어둡고 텅 빈 무대 끝을 바라본다
* 밀란 쿤데라의 희곡 「자크와 그의 주인」
[以後, 시작노트]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셔터를 누른다. 뚜렷한 피사체는 없었지만, 단지 눈앞의 풍경만을 카메라에 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황무지라도 그것이 프레임 내부로 스며들었을 때는 나름대로 '구도'를 가진다. 자크는 고삐를 늦추고 주인을 바라본다. 내려오겠냐는 질문이다. 주인은 자크의 간절한 눈빛에는 아랑곳 없다. 여전히 말이 없고 황무지를 바라본다. 자크도 포기한 듯 저 먼 곳을 다시 바라본다. 햇빛 무리와 간혹 흙먼지를 일으키는 바람이 한데 엉켜 있다. 구름 그림자 몇 개가 선인장 가시에 걸려 있다. 이제 곧 급격히 어두워질 것이다. 주인은 자크의 질문을 기억한 듯 좀 더 짙어진 그늘을 가리킨다. 자크와 그의 주인은 그늘로 들어간다. 등을 곧게 펴고 앉는다.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 트렁크 위에 펼쳐놓는다. 어둠 속의 황무지는 원근이 없다. 달과 언덕이, 벽에 걸린 판화 같다. 여기는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니라고, 자크는 중엉거린다. 낮도 밤도 아닌 시간에 자크와 그의 주인이 걸려 있다. 황무지 끝에는 첨답이 있다. 지도 상으로 묘지는 언덕 너머다. 자크가 고개를 돌린다. 갈고리 모양으로 휘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