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

by 박성현






쓴맛


박성현




꽃이 진 자리에서 쓴맛이 났다 꽃이 진 자리가 쓴맛이라 당신이 미워졌다 소슬하니 휘파람을 불다가도 다시 당신이 미워져서 이불 속으로 꼭꼭 숨었다 손끝이 물러터지도록 오래 엽서를 썼다 비틀거리는 글자에도 쓴맛이 박혀 있었다 몹쓸 말을 생각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몹쓸 말이 없었으니 밤새도록 벚나무 아래 누워 바람만 탓했다 엽서를 쓰다말고 뒤를 돌아봤다 뒤 돌아볼 때마다 당신이 미워졌다 미워서 병든 마음을 뽑아내면 당신이 쑥 뽑혔다 차마 버릴 수 없어 며칠을 울었다 쓴맛이 나를 자꾸 벚나무 그늘로 데려갔다 바람이 곁에서 소슬하니 휘파람을 불었다








시집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 문학수첩, 2020. 수록







[以後, 시작노트] 제 첫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에도 동일한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아마도 매 시집마다 '쓴맛'이 등장하게 되겠지요. 하나의 단어가 미세하게, 혹은 큰 틀에서 변주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겁니다. 제게 '삶'이란 '쓴맛'의 다른 이름인지 모르겠습니다. 달콤함은 모호합니다. 해변의 모래알처럼 어떤 대상에 붙박여 있는지 불분명합니다. 그래서 달콤함은 미각을 좁힙니다. 혀에 오래 남지 않고 단숨에 솟았다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쓴맛은 단단합니다. 맹렬하고도 단호합니다. 문신처럼 혀에 모양을 새기고 길을 냅니다. 그 모양과 길은 사람의 생활과 습속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서인지 미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쓴맛을 통해 결정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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