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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y 11. 2020

나의 삶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한국의 취준생이 바칼로레아 철학에 답하다 (15)

책임을 진다는 말은 진부합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요. 하지만 말로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삶에서 행동으로 보일 때 진부한 말에도 의미가 생깁니다. 그렇다면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에 대한 책임을 말하는 것일까요? 자신의 삶에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 대신 책임의 의미에 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책임이란 '맡아서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입니다. 삶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무언가를 맡아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무언가는 바로 '선택'입니다.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선택의 연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가볍게는 오늘은 어떤 음식을 먹을지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무겁게는 이 일을 맡을지 말지, 이 진로를 걸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까지 다양한 선택지들을 만납니다.


나의 삶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시기에는 하나를 콕 집어 선택하기를 어려워합니다. 우리가 내린 선택으로 인해 실패라는 결과를 받아들이기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손에 선택권을 넘겨버리곤 합니다. '나는 결정을 못하겠으니 네가 알아서 해줘'라는 식으로 당면한 문제를 눈 앞에서 치워버리는 것이지요. 완벽주의 경향이 있는 사람은 불확실성이 클수록 포기해버립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불안하니 아예 시도를 하지 말자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지금도 이도 저도 선택하지 않고 포기해버리는 유혹을 떨치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망설임을 극복하고 뭐라도 해보려는 이유는 제 삶을 책임지지 않을 때의 고통이 컸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누군가에게 결정을 맡겨 당장은 속 시원했지만 이내 불만이 생겼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것입니다. 아무리 상대가 더 유능하고 경험이 많더라도 개개인의 특성에 맞게 문제를 진단해주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맹목적으로 누군가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것을 경계합니다. 이것이 정답이니 따라 하기만 하면 해결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곧이곧대로 믿기 전에 잠시 그 생각을 멈춰주시길 바랍니다. 그 결정이 그 사람에게 옳았던 이유는 그 사람이 가진 환경의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이미 결정을 내리고 경험했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자신에 맞게 취사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상담심리에서는 '누구나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봅니다. 흔히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내담자)은 상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랍니다. 실제론 상담자는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내담자에게 질문을 던져 내담자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지만 꺼내기 두려워하는 마음을 다독여주고,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보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만약 자신의 결정이 맞는지 확신이 어렵다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렸는지를 찾아보세요. 좋은 질문은 브런치에는 물론 검색을 통해 만나는 수많은 글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누군가의 조언을 구하고 싶거든 이게 맞는지 틀리는지를 묻는 대신, '당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겠습니까?'라고 질문하세요. 상대에게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생각과 판단의 근거를 듣고 자신이 보기에 맞는 판단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렇게 한다면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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