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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y 16. 2020

옳고 그른 일은 단지 관습적인 것에 불과할까요?

한국의 취준생이 바칼로레아 철학에 답하다 (17)

이번 질문은 사회도덕적 판단에 관한 주제를 다룹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행동을 관찰할 때 그 행동이 옳고 그른지 판단합니다. 이 판단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관습이란 '어떤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그 사회 구성원 사이에 널리 인정하는 질서나 풍습'을 의미합니다. 사회가 인정하는 질서와 풍습이 도덕적 판단의 전부일까요? 사회도덕적 판단의 기준을 논의하기 위해선 우리가 언제부터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바로 유아의 도덕적 판단 연구를 찾아보는 것이지요.


Kiley Hamlin의 helpers and Hinderer 실험을 예로 들겠습니다. 아동에게 두 장면을 보여줍니다. 빨간색 동그라미는 산 위를 올라가려 합니다. 한 장면은 노란색 세모가 나타나 동그라미가 올라가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다른 장면은 파란색 네모가 동그라미가 산 위를 올라가게 도와줍니다. 두 장면을 모두 보여주고 난 뒤 아동에게 세모와 네모 모양의 장난감을 줍니다. 그런 후 어떤 장난감을 고르는지 지켜봅니다.

동그라미를 방해하는 세모(좌), 동그라미를 도와주는 네모(우)


실험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아동은 네모를 선택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더라도 아동이 스스로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아의 사회도덕적 판단과 관련한 실험을 살펴보면 3세 이전의 아동은 부모의 규제에 의한 외적 조절에 영향을 받았다면, 3세 이후부터는 외부의 조절이 없더라도 스스로 행동이 적절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3세 이후부터 도덕적 자아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동은 착한 네모를 선택한다

유아기 사회화의 핵심은 인간 사회의 다양한 규범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규범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다른 사람을 해하지 말라', '남의 물건을 탐내지 말라'와 같은 도덕적 규범입니다. 타인에 대한 해악을 금지하고 공정성과 관련됩니다. 둘째 '식사는 수저로 해야 한다', '연장자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해야 한다'와 같은 관습적 규범입니다. 권위와 관행과 관련됩니다.


도덕적 규범은 문화 보편적이며 비교적 절대적입니다. 반면 관습적 규범은 문화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며 비교적 유연합니다. 앞서 언급한 실험에서 아동의 도덕판단은 타인에 대한 해악에 관한 것이므로 '도덕적 규범'에 근거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개인의 행동을 옳거나 그른 것이라 판단하는 기준은 관습적 규범뿐만 아니라 도덕적 규범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2002년 Killen이 85개 선행연구를 검토한 바에 따르면, 사회적 사건을 평가할 때 우리는 공정성 및 대인적 의무와 집단 기능 그리고 개인의 권리라는 기준을 따른다고 했는데요. 여기서 공정성 및 대인적 의무는 '타인에 대한 공정한 처우'를 의미하며 도덕적 규범과 관련됩니다. 집단 기능은 사회적 관습의 근간이 되며 관습적 규범과 관련됩니다.


일부 학자들은 집단주의 사회에선 도덕적 규범과 관습적 규범이 혼재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연장자에 존댓말을 사용해야 한다'와 같은 규범이 그것입니다. 연장자에게 존댓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심리적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서구문화권과 같이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는 사회에선 심리적 위해가 없기 때문에, 혼재보다는 관습적 규범 중 대인관습 즉 특정인에 대한 의무에 한해서 도덕적 규범과 혼동의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옳고 그름에 대한 최초의 지각'은 이성이 아닌 즉각적인 감각과 느낌에서 온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만족스러운 행동과 불쾌한 행동을 경험하면서 이 행동이 옳고 그르다는 규범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교육과 양육에서 형성되는 습관과 관습보다는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도덕적 감정이 옳다고 봤는데요. 다만 우리가 옳은 일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도구로서 습관과 관습이 필요한 점을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도덕적 규범과 관습적 규범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우리가 판단하는 기준이 보편타당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문화와 관습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우리가 옳다고 판단한 기준이 관습적 규범에 의한 것이라면 사회 구성원이 중요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관습적 규범은 문화에 따라 상대적이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의 관습적 규범에 대해 존중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그 기준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자문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참고자료:

- 유아의 사회도덕적 판단에서 나타나는 도덕적 규범의 우위: 관습적 규범과의 비교, 2019년 8월, 이수현

- 편견이란 무엇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anCaGBsBOxM

이미지 출처: Photo by Wesley Tinge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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