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비내린 May 22. 2020

타인에 대한 심판은 가능할까요?

한국의 취준생이 바칼로레아 철학에 답하다 (18)

단편적인 정보로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즐거워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어떤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 트위터에, 각종 소문 속에 그들은 있다. 문학이 귀한 것은 가장 끝까지 듣고 가장 나중에 판단하기 때문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


우리는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을 보았을 때 그 행동이 잘못됐다고 비난하곤 합니다. 상대를 비난하는 우리조차도 순간적인 감정 때문에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흔히 상대가 잘못을 비난할 때 "뭐라 할 자격이 없다"라는 말을 하는데요. 타인의 잘잘못을 판단하는 일은 어떤 자격을 갖춰야만이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답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철학적 질문들>에선 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을 얘기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적으로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란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이는 노력하는 것이 곧 성공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완벽하게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만 좋은 사람이라면 도덕적으로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닌 것이 됩니다. 이는 우리가 설령 불완전한 존재이더라도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이 곧 윤리적인 삶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 앤서니 그레일링은 "죄를 짓는 문화에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사람에게 위선의 낌새만 있어도 그 메시지를 손상시키기 충분하다"고 말하며, "어떤 주장의 출처가 오염되었으면 그 주장도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가령, 환경보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A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A는 평소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친환경 세제를 사용합니다. 한편으로 그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를 입고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타는 것을 선호합니다.


누군가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를 입고 자가용을 타는 A를 보고 환경 보호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A가 일상의 모든 면에서 환경보호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처음부터 완전하게 갖추고 시작하기란 어렵습니다. 그의 꼬투리를 잡아 비난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무시하게 된다면 어느 누구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기란 어렵습니다. 타인의 비난이 두려워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살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비난하기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미지 출처: 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옳고 그른 일은 단지 관습적인 것에 불과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