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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Dec 30. 2022

굿바이 2022

첫 번째 29살로 살았던 1년 회고

2022년에는 30살이 될 때 마음가짐에 대해 쓰려고 했지만, 한국에서도 만 나이가 채택되면서 또다시 29살로 내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서른이 되기 전 20대 끝자락을 다시 한번 보내게 된 건 아직은 놓고 싶지 않은 20대의 삶을 조금 더 살아보라는 삶의 기회일까.


북촌의 어느 카페에서 따뜻한 차와 크레페를 먹으며, 키보드에 손을 얻는다. 올해 회고는 크게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얘기를 꺼내려한다.


올 한 해 동안 배운 것

하나, 성장 지향에서 건강한 삶으로의 변화. 2월 초에 '공황장애'를 진단받았다. 지난겨울 지하철 출구에서 나가려 했을 때 갑자기 숨이 차면서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바로 응급실로 향했고 다행히 이상은 없는 걸로 나왔다. 당시 경험이 강렬해서 언제 모르게 또 그 증상이 나타날까 겁이 났다. 숨을 내쉬는 데 과도하게 의식하게 되니 증상은 악화되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가쁜 증상이 나타났다. 지하철에 탄 어느 날 지하철이 움직이는 것마저 힘들어하는 걸 깨닫고 나니 내가 심각한 문제에 처했구나 싶었다.


정신과에 가니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진단을 내렸다.

"공황장애 증상이네요."

"네?"

공황장애는 TV 속에서나 볼 법한 정신적인 병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게 공황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큰 질병을 안게 된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의사 선생님은 공황장애라 해서 큰 문제는 아니라며, '굿바이, 공황장애'라는 책을 추천했다. 나는 그 책을 읽고 나서야 공황이 질병이 아니라, 몸이 과도하게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생기는 증상이란 걸 이해하게 됐다.


공황을 겪고 난 뒤 나는 그동안 뒤도 안 보고 늘 불안해하며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갔던 지난날을 생각했다. 성장이 인생의 중요한 삶의 자세라 여겼던 나는 '성장이 정말 인생의 전부일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아무리 성장이 중요하더라도 내 삶이 건강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굳히게 된 건 '다정함의 과학'이란 책에서 암을 진단받았던 두 여자의 사례를 읽고서였다.


한 여자는 암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반면, 다른 한 여자는 암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 두 여자의 삶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 주변에 찾는 이 없던 여자는 홀로 외로이 병을 앓았고, 주변에 사람들로 비던 여자는 주변인들의 응원에 힘입어 삶을 살아간다. 나는 어떤 사람에 가까울까. 성장이란 명목으로 외로움에 더 기울였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어 공황 증상도 있는 듯 없는 듯 옅어졌고, 조금씩 약을 줄이는 과정에 있다. 전보다는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영양제를 챙겨 먹고, 간단한 필라테스 동작을 따라 하며 건강한 삶을 챙기려 한다. 내년에도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둘, 사랑에 용기를 내보는 것. 지금까지 썼던 글에는 '연애'와 '사랑'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 사랑에 한 해선 어쩐지 어수룩하고 수동적이었던 나였기에 친구/지인들이 말하는 연애 얘기에 관심이 없는 척하면서도 한편에는 부러움이 있었던 것 같다. 올 한 해 두 번의 사랑이 찾아왔고 두 번 다 해피엔딩이 이뤄지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랑에 수동적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용기 내어 먼저 연락을 하고, 고백도 해볼 수 있어서 그 경험이 후회되진 않는다.


12월에 나트랑 달랏 투어에서 은퇴한 중년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작년에 은퇴를 하고 평소 가지 못했던 여러 나라를 떠돌며 세계 여행을 다니고 있었는데, 연애 초기 풋풋한 감정은 없더라도 서로를 향한 은은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중년이 되었을 때 곁을 내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었다. 다음에 사랑이 찾아온다면 이번엔 정말로 놓치지 말아야지. 먼저 용기 내어 말해야지.


바림아, 어른이 된다는 건 말이야. 완벽한 선택을 하는 게 아니야. 그냥 후회 자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는 거지. 그것 역시 신중한 선택이었다고. 그 순간을 결정한 스스로를 존중하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결정한 일에 후회가 남을까 두려워하지마. 그것마저 받아들여. 그리고 잊지 마.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 챌린지 블루 중 -


셋, 자신을 진심으로 믿는 것. 올초에 인턴에서 전환되지 못하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경력으로 다음 이직처를 찾을 수 있을까 절망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 스타트업에 PO로 입사해 현재까지 잘 적응하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너무 못 믿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곳에 와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동안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점들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다시피 기획자로 처음 발을 떼었던 시기에 큰 부담과 피드백이란 무게에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늘 소속되지 못해 겉도는 느낌. 언제 내 밑바닥이 드러날지 몰라 초조해했던 날들. 그런 트라우마를 없애 준 건 나를 온전히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다른 사람의 칭찬이 겉핡기 식으로 들렸던 전과 달리 이제 사람들의 진심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는 나를 너무 쉽게 버렸지만 내게서 버려진 나는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밝은 밤 중-


올 한 해 나의 삶을 한 문장으로 한다면
특히 여름에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엔 아헨을 생각한다. 예상 밖의 차가운 공기 한 줄기를 만나면 아, 방금 그 바람은 아헨의 바람 같았어,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점을 지나온 작은 도시를 잔잔한 형태로 사랑하고 있다. 그런 형태의 사랑도 있는 것 같다.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올 한 해 나의 삶을 한 문장으로 한다면 '아헨의 바람' 같았다고 말하고 싶다. 공황, 이직, 사랑 등 굵직한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지만 인생의 모든 시간을 들여다봤을 때 편안하고 따스한 해였다. 남산타워가 보이는 창가를 잠시 바라보며 도시의 황혼을 기다린다. 내년은 또 내 삶에 어떤 일이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올해 사랑했던 것들

올해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언젠가 한번 영화에 대한 감상을 글로 적어보고 싶다.


올해의 음악

뉴진스의 Hurt

아이돌을 원래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뉴진스의 데뷔곡을 듣고 충격 + 신선함을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뭐냐고 물으면 뉴진스라고 답할 것!


올해의 공연

태양의 서커스 뉴 알레그리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뛰어난 퍼포먼스, 중간중간 깨알 같은 개그 코너 등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본 공연. 앞으로 문화생활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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