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비내린 Oct 20. 2024

아름다움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소월로 가는 길에서

아름다움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주말엔 늘 그렇듯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목적지엔 이미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기대하지 않은 만큼 아쉬움 없이 늘 가던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미뤄둔 독서를 하고 마지막장을 넘긴 후 일상으로 가려하는 시점에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싶어졌다. 저녁을 먹기엔 아직 이른 오후에 카페를 나서고 남산 끝자락을 향했다.


지도 앱이 알려준 경로는 무척이나 가팔라 뜻밖에 산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힘겹게 올라온 길엔 높은 빌딩도 붐비는 사람도 차의 경적 소리도 없었다. 가는 길목엔 남산타워가 빼꼼히 보여 사진으로 담았다.


내리막길을 걸을 즈음 하늘은 노을빛으로 푸름을 지워가고 있었다. 그 순간 왼편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것에 이끌려 원래의 목적지를 두고 왼편을 향해 걸어갔다. 주황빛으로 물든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그 장면을 기다렸던 것처럼 그 맑고 시린 도시의 광경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해 가만히 응시했다.


목적지를 향해 기필코 아름다움을 보리라는 의지는 그곳을 도달하는 순간 감흥을 잃게 한다.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이 많아지는 나이엔 그래서 기대하지 않던 뜻밖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나는 그것을 등을 지고 가는 길이 아쉬워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을 도려내 기억에 담아두듯이.

올라온 길과 다른 길을 택해 내려오는 중에 방범 초소를 만났다. 백열전구 하나에 의지한 작은 집은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내는  쓸쓸하고 가여웠다. 찰나의 망설임으로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 못해 아쉬웠지만, 하루의 고단한 끝을 보낸 노인이 초소를 나와 문을 걸어 잠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 마음을 달래었다.

어스름이 지나고 밤이 내려온 도시엔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빛이 인간이 걷는 길을 밝혀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