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성장이란 단어에 집착하던 시기가 있었다. 제품적으로도 커리어적으로도 우상향을 그리는 그래프의 곡선처럼 커리어 인생의 초입에선 앞으로 기다리는 미래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누구나 그렇듯 마냥 오를 것 같던 그림은 어느 순간 평행을 달리다 중력에 당겨지듯 아래로 곤두박질하는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내게는 직장에서의 첫 한 해를 넘기는 지점에 맞닥뜨리곤 했다.
5년 차, 10년 차 와 같은 연차가 주는 무게는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쌓은 지식과 노하우의 총량과 같아서 내가 그만큼의 경험을 축적해갈 즘엔 두려움도 불안함도 없이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니 1년 차, 2년 차, 3년 차로 숫자가 바뀌어가면서 여전히 모르는 것도 어려운 것도 많다는 사실에 쉬이 좌절하고 마는 거였다.
성장은 익숙해짐과 다르다. 익숙한 일을 잘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대로 답습함에 불과하다. 일이 수월해질 수 있으나 익숙함에 길들여지면 지금의 것을 고수하고 실패를 두려워하고 만다. 성장은 도망치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을 꾹 참고 넘어설 때 찾아온다. 전혀 알지 못했던 광고 영역을 맡아 광고 수익을 내야 했을 때, PM이 아닌 PO로서 온전히 우선순위와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을 때 같이 익숙함을 넘어 모르는 영역을 해내야 했을 때가 내게는 가장 무섭고 두렵고 도망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였다.
성장은 내가 못한다는 진실을 받아들였을 때 찾아온다. 스스로의 못난 모습을 마주 보기란 괴롭다. 주위의 기대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만큼. 누구나 처음은 있다. 하지만 처음의 서툴고 실수하던 일들은 숨어 있고 성장한 후의 결실은 주변에 공개되는 일이 많아 모를 뿐이다. 성장이 마냥 기쁘고 두근거리는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 힘든 시기를 지난다는 사실은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이제는 내가 내린 선택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결과를 두려움 없이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