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밤
다른 이는 모르고 나만 아는 진실 두 가지. 하나, 나는 공황장애를 가졌다. 공황장애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지하철에서 지상으로 나가는 계단에서였다. 오르는 내내 유달리 숨 쉬기 어려웠다. 곧이어 과호흡 증세로 이어지자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응급실에 갔지만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일시적이겠거니 넘겼지만 증상의 발현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지하철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만으로 공포를 느끼고 숨 쉬기 힘들 정도였다. "신경 문제인 것 같은데 정신과에 가보세요." 심장에 문제가 있나 싶어 찾아간 내과 의사는 마음의 문제일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날부로 정신과를 방문했고 그동안의 증상이 공황장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황장애는 '장애'라는 표현 때문에 심각한 문제라고 오해를 사기 쉬웠다. 가족과 친한 지인을 제외하곤 공황을 밝힌 적은 없다. 공황을 느끼기 전후로 내 삶은 변화했다. 지금은 꾸준히 약을 먹고 증세가 나아서 약 없이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둘, 나는 일상을 특별하게 볼 수 있다. 대중교통보다 걷는 걸 좋아해서 출퇴근을 도보로 걷는다. 자주 가던 길목이더라도 시간과 계절에 따라 새롭게 다가올 때가 많다. 무심히 지나쳤던 거리를 유심히 보면 이런 게 있었나 싶어 신기해했다. 집 근처인 성수동을 벗어나 다른 동네로 떠나면 낯선 장소에 여행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사진작가의 마음으로 길거리에서 아름다운 구도와 분위기를 찾는다.
작년 10월 '퇴근한 김에 과학관'이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반차를 내고 과천에 다녀왔다. 일정보다 일찍 도착해 2시간 정도 시간이 넉넉했다. 시간 좀 때울 겸 과학관 옆에 있는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에서 서울랜드로 가는 길 오른편에 작은 잔디밭이 보였다. 노을 진 빛이 벤치와 낙엽을 가려서 따스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비밀의 화원을 발견한 메리가 된 듯한 하루였다. 이제 곧 벚꽃이 만개한다. 또 어떤 풍경이 내게 울림을 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