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밤
내 인생은 글을 쓰기 전과 후로 나뉜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때 단짝친구와 교환일기처럼 만화 캐릭터를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돌아가며 쓴 적이 있다. 문체는 투박했을지 모르나 이야기를 쓰는 게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교환일기에 흥미를 잃고 나선 제대로 글을 쓴 적이 없다. 속에 있는 얘기는 많은데 막상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기엔 준비되지 않았다.
다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오랜 취준생활에 무력감을 느낀 때에 왔다. 아르바이트와 계약직을 번갈아가며 월세를 내는 동안 4번의 공채를 지났다. 서류를 넣는 족족 떨어지니 자존감은 심연까지 가라앉았다. 어느 날 한달자기발견이란 모집글을 봤다. 이 글을 쓰는 것처럼 하루에 한 번 질문을 받고 글로 답하는 곳이었다. 모임의 규칙은 두 가지. 글은 반드시 SNS, 블로그 등 누구나 볼 수 있게 할 것, 멤버들 글에 1번 이상 댓글을 남길 것이었다.
나는 이 모임에 참여하면서 일면식 없는 누군가로부터 많은 위로와 공감을 받았다.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팠던 과거, 불안한 현재,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냈지만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 기나긴 어둠 속에 침묵했던 이는 무언의 손길에 이끌려 빛으로 왔다. 눈을 떴을 땐 모든 이의 축하 속에 기뻐하는 내가 있었다.
모임을 하는 동안 별개로 앱 서비스를 UX 중심적으로 분석한 글을 연재했다. 그전까진 브런치에 조용히 올리기만 했다면 이 글이 현직자 눈에도 괜찮은지 검증해보고 싶었다. 당시 활발했던 페이스북 그룹에 글을 올렸다.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고, 일부 글은 개발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 단지 글을 꾸준히 올렸을 뿐인데 PM 자리를 제안하는 메일들이 왔다. 그중 가장 가고 싶었던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입사했고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때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을까. 다른 선택지의 미래는 상상하기 어렵다. 글은 내게 중심이 돼주는 힘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