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를 떠나는 새

25년 12월 회고

by 꽃비내린

연말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부산에 돌아왔다. 서울에 온 지 8년째. 친구들이 하나둘씩 서울에 올라오고 친척들이 유일하게 모일 구심점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부산에 갈 이유가 없어졌다. 오랜만에 마주한 부산은 서울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프랜차이즈가 즐비하고 유행에 따라 우후죽순 생긴 포토부스, 인형 뽑기 기계들이 서면의 거리를 채웠다. 부산만의 색이 빠진 것 같아 아쉽다. 해운대에 도착하자 푸른 바다가 반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세월에 변함없이 푸르고 깨끗하다. '이게 부산이지' 속으로 생각하며,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이곳에서 올해를 떠나보낸다.


부산에서 첫 식사로 스프카레, 삿포로가 생각나는 맛이다


주체적인 삶

하지만 그것들을 믿는 행위 자체가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들어냅니다. 산타클로스는 실존하지 안 습지다. 하지만 선행이 보상받는다고 믿고, 마법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우리를 우리답게 만든다고 믿는 것. 이러한 믿음 또한 우리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You Sit on a Throne of Lies 중


작가로서의 나와 PO로서의 나 두 정체성을 균형 있게 담으려면 주어진 시간을 잘 쪼개어 써야 한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업무를 제외하곤 목표를 세우고 의식적으로 매일 시간을 들인 경험이 잘 없었다. 에너지가 낮았던 시기엔 긴 시간을 두고 목표를 향해 달리는 과정이 무겁게 느끼기도 했고 말이다. 다시 무언가를 시도할 힘이 생기고 나서 한 가지를 반드시 정하고 움직이겠다고 다짐했다.


목표를 명확히 한다. 목표 없이 달리기만 했던 시기가 있었다. 막연히 지금 커리어에서 정상(당시엔 CPO)이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훌륭한 PO에 요구하는 자질과 실력은 막 1년 차에게 부족한 점만 여실히 드러냈다. 1년 차와 5년 차, 10년 차는 경험에서 오는 실력이 다르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 간격을 빨리 채우고 싶은 조급함에 책망하기 바빴다. SNS에서 비교할 대상은 무한에 가깝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사람은 잘된 점들만 보여주리 마련이니까. 나는 이들의 좋은 점만 떼어내어 얼기설기 붙인 이상향을 쫓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피어난 이 열정을 사그라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나만이 갈 수 있는 길을 그려낼 필요가 있었다. 최근에 짐 콜린스의 '좋은 리더를 넘어 위대한 리더로'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리는 삶의 모델을 찾았다. 짐 콜린스는 함께 집필 한 빌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이번 개정판에 빌에 대한 얘기를 수록했다. 그는 '타인을 믿는 만큼 성장한다고 믿었고 인생이 내일 당장이라도 끝날 수 있다는 가정을 인정하며 지금 하는 일을 즐기고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빌처럼 단 한 사람이라도 나의 얘기에, 나의 믿음에 삶을 변화시킬 실마리를 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 글을 쓰고 듣는 사람이 되려 한다.


LBCC에서 '목표를 실천으로 만드는 12주 계획법'을 들었다. 3개월을 주기로 가장 중요한 목표 한 가지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습관을 하루일과의 첫 번째로 하는 것이다. 거기서 배웠던 것 중 하나는 일정을 카테고리로 분류해 관리하는 것이다. 하루 중 어떤 종류에 시간을 보내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 쓸데없이 보내는 시간을 생산적으로 바꾸기 좋았다. 아직 시작한 지 한 달이 안된 기간이지만 앞으로 3개월간 꾸준히 실천하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보완해가려 한다.

나의 경우 일상과 업무 모두 카테고리로 구분해두었다.

이사

이사를 했다. 서울에 올라온 시기가 12월이어서인지 매번 이사를 갈 때마다 추위로 고통이다. 다음엔 따듯한 날씨에 이사를 가리라 다짐하며 짐을 정리했다. 이사를 자주 다니면서 생긴 습관은 무언가를 얻으면 그만큼을 버리는 것이다. 스웨터를 사면 보풀이 생겨 잘 안 입는 스웨터를 버리는 식으로 말이다. 짐을 작게 유지하는 버릇이 있다 보니 물건에 애정이 적었다. 아깝다고 계속 박스에 넣어 가지고 다녔던 것 들도 몇 년이나 꺼내본 적 없다는 걸 알고 미련 없이 버렸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집에 불이 나서 한 가지만 가져가야 한다면 뭐를 챙길 거냐고. 나는 휴대폰을 쥐고 갈 거라 답한다. 모든 게 없어져도 몸뚱이와 돈이 있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그럼에도 아끼는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는 편지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꾹꾹 눌러 담은 글을 차마 버릴 순 없었다. 가끔씩 편지를 들춰보며 이들이 전해준 마음을 눈에 담는다.

오랜만에 햇살이 드는 집이라 좋다

빌런

나는 누군가의 빌런이 되었다. 대체로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지만 미운 상대에게 뾰족하게 대하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이사를 가게 된 것도 집주인과의 문제 때문이었는데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나와 동생은 집주인의 무책임한 태도에 신뢰를 잃었다. 그 뒤로 집주인과 우리 사이는 서먹해졌다. 계약만료일 한 달 전 우리는 연장하지 않고 이사를 가겠다고 했고 그는 언제든 나가도 좋다고 했다.


만료일이 주중이었기에 전주 주말에 이사를 했다. 언제든 가도 좋다던 그는 보증금과 공과금 처리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꾹 닫았다. 몇 차례 연락 끝에 계약만료일에 다 처리하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아 이사를 간 뒤에도 몇 가지 짐은 놔뒀다. 아직 법적으로 집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집을 헤집더니 환풍기 고장으로 꼬투리를 잡았다. 고장 날 전조는 전부터 있었다. 환풍기는 작년부터 오락가락해서 한 번 수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올해는 비틀어진 문짝에 쓸려 선이 찢어지는 문제가 있어 문 모서리를 자르기도 했다. 그때는 아무 말 안 하더니 이사를 간다고 하니 물어라고 하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언쟁이 피곤해서 물어주고 말았을 텐데 이전에도 그렇고 계속 세입자의 과실로 돌리는 집주인의 태도에 호구처럼 당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지금이야 보증금 몇천만 원 수준이지만 같은 상황에서 몇 억 단위로 갔을 때 어버버하다 손해만 보겠다 싶었다. 이 문제가 지금 내게 주어진 건 더이상 회피하지 말고 직면해라는 신호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배움의 기회로 삼아 내용증명을 쓰는 법부터 임차권등기명령까지 알아봤다. 주변에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했다. 회사 대표님께 이 일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있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원래는 대신 환풍기값을 내주려 했는데 내 의지가 강해 보인다며 아는 법무법인을 소개해줬다.


아쉽게도(?) 법적 대응까지는 하지 않고 보증금을 받아냈다. 역으로 내용증명을 보낼 거라는 등, 괘씸해서 다 받아내겠다는 등 온갖 협박을 받았지만 법적으로 하겠다고만 계속 답하니 결국 그가 먼저 꼬리 내렸다. 그러면서 원래 환풍기값 얘기 안하려 했는데 평소에 우리 태도가 좋지 못해서 물으려 했다면서 태도의 문제로 넘어갔다. 감정 때문에 못되게 굴었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니 우스웠다. 그게 왜 내 잘못이지? 신뢰를 먼저 잃게 한 건 그가 먼저였는데 말이다.


한 편으론 이 갈등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세입자와 공인중개사 모두 집주인의 얘기만 듣고 나를 희대의 쌍년인 것처럼 만들었다는 거다. 그들이 나를 보는 혐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스텔라장의 빌런에서 나온 가사처럼 ‘내가 제일 사랑하는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개 say’가 된 기분이랄까. 나 또한 주변이들에게 집주인을 ‘아주 못 돼먹은 작은 악마’로 보게 만든 거와 같으니 누가 더 못났고 할 형편은 아니었다. 상황이 달랐다면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겼지만 씁쓸한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