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어른

26년 1월 회고

by 꽃비내린

다정한 어른

새해 한 주를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오가며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봐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월 1일 아차산을 내려와 추위로 언 몸을 풀 겸 코코아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편의점에는 마침 기사님이 물품을 두고 가려는 참이었고, 점원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하며 나섰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계산이 끝나고 점원에게 새해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점원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새해 인사로 답했다.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졌다. 한 주 내내 다양한 분들에게 새해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같은 형식적인 인사보다 누군가의 안녕을 빌어주는 말이 세상을 따스하게 만든다. 새해가 이미 지나버렸다고? 그럼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란다고 말해보자.


소통은 투명하게

팀원이 제품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팀원의 동기가 낮은 게 아니라 리더가 충분한 맥락을 공유하지 않은 결과일 수 있다. 이번 1분기 전략에서 처음으로 다양한 질문과 의견이 나왔다. 회사의 목표와 상황에서 제품의 전략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 전략이 이렇게 나오기까지 의사결정 과정을 문서에 담고 나서였다. 그전까지는 어떠한 전략으로 이런 일을 할 거다와 같이 이미 PM선에서 정리된 문서로 논의가 되었다. 거기까지 나온 맥락이 공유되지 않으니 팀원이 거기에 덧붙일 얘기도 없었을 거다. 의사결정의 과정이 투명하면 할수록 팀원이 대화를 이어갈 여지가 생긴다. 그러니 의도적으로라도 맥락을 자주 공유하도록 하려고 한다.


레드 플래그

AWS 이슈로 데이터가 업로드되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급한 대로 임시 클라우드로 이전했지만 쿼리 출력이 굉장히 느려서 일과 중에 도저히 데이터 분석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집에 돌아와 밤 12시를 넘어서까지 작업하는 일이 많았다. 다시 의욕도 생겼고 열심히 달려야 할 시기니 이 정도야 괜찮겠지 하고 넘어간 게 화근이었다. 어느 순간 일에 집중이 안되고 피곤해서 진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레드 플래그가 세워졌다. 몸이 내보내는 신호를 못 알아채고 달리다간 크게 번아웃이 올 것 같았다. 레드 플래그가 세워진 그날 오후에 다음날 반차를 썼다. 집에 일찍 돌아가 내내 푹 자고 나니 컨디션이 괜찮았다. 의욕이 많다고 해서 섣불리 일을 만들지 말자. 그리고 이번처럼 레드플레그가 세워졌을 때 미리 알아차리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하기로 하자.


비전

N님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마지막으로 뵈었을 적이 부산에서 강연한 날이었으니 거진 2년 만이다. N님은 대기업에 이직해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다. 올해로 3년 차가 되면서 이직 고민이 슬슬 올라올 시기다. 처음에는 더 큰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N님이 느꼈던 대기업 문화와 경험을 들으면서 사실은 그게 내가 원하던 게 아닐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동안 네임밸류와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에만 신경 썼는데 그런 회사에 일하면서 좋았냐 하면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N님은 대기업에 입사한 것도 회사 규모보다는 회사 비전에 끌려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 창업을 했을 때도 오프라인 사업이었고 지금 하는 일도 오프라인과 가까운 사업이다. 최근엔 피지컬 AI가 뜨면서 그와 관련된 부서 이동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회사보다 나만의 원칙에 따라 이직을 하고 싶어졌다. 나는 세상에 옳은 일을 하는 것, 그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더 나아질 것이란 믿음으로 하는 회사에서 그 비전이 달성하는데 깊이 관여한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싶다. 요즘 나는 내가 경험해 왔던 불안감과 낮은 자존감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얼마나 벗어나기 힘든지 알아서 말이다. 지금 나의 PM으로서 커리어와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원칙을 하나씩 정리해 가 보면 답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PM의 재정의

링크드인에 PM 회고모임 모집글을 올린 후 UX리서처인 A님이 DM으로 연락을 주셨다. A님은 UX리서치를 오래 하다가 최근에 PM으로 전환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PM의 역할과 성장 방향성에 고민이 있다며 커피챗을 요청했다. 커피챗을 요청받은 건 오랜만이라 내 경험이 도움드릴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그런 고민과 무색하게 A님의 궁금한 점에 답하면서 PM에게 필요한 자질과 역량에 대해 다시 정리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첫째로,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배웠던 OKR, Roadmap, Decision tree, PRD 등의 여러 프레임워크와 방법론은 결국 '정렬'을 위한 도구이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게 하는 것, 이를 위해 논리적 설득을 쉽게 돕는 것이 프레임워크인 것이다. 프레임워크를 접하면 프레임워크에 정해진 구조를 완벽히 따라 하려는 실수를 하기 쉽다. 가령 User Story와 Accept Criteria 형식의 PRD 문서는 '유저의 니즈를 고려하고 제품에 반영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함'이지 '유저는 000을 원한다, 그래서 000을 한다'와 같은 형식을 지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고객에게 어떤 페인포인트를 해결하려고 하는지만 명확하다면 User Story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현재 내가 쓰는 PRD에도 더 이상 User story를 차용하지 않는다.


둘째로, AB테스트, 유저 리서치, 퍼널 분석 등과 같은 정성/정량적 데이터를 다루는 것은 고객의 니즈라는 과녁을 정조준하기 위한 도구이다. 우리는 고객이 어떤 욕구와 고통을 겪는지 모르기 때문에 유저 인터뷰를 통해 범위를 좁히고, 데이터를 확인해 가설에 확신을 싣고, 화살을 쏘은 결과에 따라 과녁의 위치를 파악해나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남들이 실험을 해야 한다고 하니까 실험하고, 인터뷰를 해야 한다니까 인터뷰를 하는 식이면 안된다. 실험은 우리가 개선하려는 지표에 어떤 요소가 얼마큼 영향을 주는지 알아볼 때 써야 한다. 가령, 커머스에서 결제 전환율이 주요 지표라고 하자. 퍼널 분석을 했더니 장바구니에 담기까지는 했지만 그다음 단계에서 결제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기서 가정이 명확하고 경쟁사 사례 등으로 확신이 있다면 AB테스트를 진행해 그 가정이 결제 전환율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수치화할 수 있다. 반면 가정이 모호하고 확신이 없다면 장바구니에 담았지만 결제하지 않은 유저를 대상으로 설문 혹은 인터뷰를 진행해 어떤 상황에서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결제를 하지 않는지를 파악한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가설을 좁히고 그 가설이 맞는지 실험으로 검증해 보는 것이다.


훌륭한 PM은 조직 문화, 제품의 성장단계, 시장 상황에 따라 적합한 프레임워크를 꺼내어 잘 다루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프레임워크를 정렬과 학습의 도구로 바라보고 프레임워크 자체보다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참고할 요소로서 활용하는 사람이다. 아직은 무수히 많은 프레임워크가 상위 미션에서 제품 실행까지 단계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는 과정에 있다. 하나씩 조립하고 분해하면서 나만의 의사결정론을 만드는 것이 올해 목표이다. 앞으로 있을 PM회고모임에서 이런 연습들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